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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여기자 러시아 잠입 후 끔직한 죽음, 과거 침묵을 거부한 여자는?

JWS 2025. 5. 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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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여기자 비참한 죽음의 의미

우크라이나 여기자 빅토리야 로시나의 죽음은 단순한 참극이 아닌, 전쟁 상황에서 언론인과 민간인이 어떤 극단적 폭력에 노출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비극적 상징입니다. 로시나는 러시아군 점령지의 고문 실태를 취재하던 중 체포됐으며, 구금 중 신체적 고문과 약물 투여, 식음 전폐 등으로 생명을 잃은 것으로 파악됩니다. 시신은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였고, 러시아는 신원조차 숨긴 채 "이름 미상 남성"이라 기재했습니다.

국제 언론과 인권 단체가 공동으로 이 사건을 추적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사망 경위는 여전히 불명확합니다. 로시나는 전쟁 중 러시아에 의해 사망한 최초의 우크라이나 언론인으로 기록되었고, 우크라이나 정부는 그녀의 죽음을 전쟁범죄로 간주해 조사 중입니다. 과거에도 용기를 내 목소리를 높였던 인물은 어떻게 되었으면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요?

2021년 우크라이나 법정에 섰던 고(故) 빅토리야 로시나 기자. 로이터=연합뉴스


나치에 목소리 높인 소피 숄

소피 숄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에 맞서 싸운 대표적인 청년 저항운동가였습니다. 그녀는 오빠 한스 숄과 함께 ‘백장미단(Die Weiße Rose)’이라는 지하 저항조직을 결성해, 비폭력 방식으로 나치의 폭정과 전쟁 범죄에 항의했습니다. 뮌헨대학교에서 철학과 생물학을 공부하던 소피는, 캠퍼스 곳곳에 전쟁 반대와 양심적 저항을 촉구하는 전단지를 배포했습니다. 그녀는 당시 독일 사회가 침묵하고 외면했던 진실, 전쟁과 유대인 학살, 표현의 자유 억압 등을 대중에게 알리고자 했습니다. 소피의 행동은 단순한 학생 운동을 넘어, 독일 내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정의를 외치는 소중한 목소리였습니다.

소피 숄


나치에 비참하게 처형당하다

1943년 2월, 소피 숄은 뮌헨대학교 본관에서 전단지를 뿌리던 중 학교 관리인의 신고로 체포되었습니다. 그녀는 게슈타포 심문에서 단호하게 자신의 행동을 인정하고, “누군가는 말해야 했습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체제는 젊은 양심을 가차 없이 짓밟았습니다. 소피는 오빠 한스, 친구 크리스토프 프로프스트와 함께 반역죄로 기소되었고, 단 4일 만에 재판과 판결이 이루어져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21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한 그녀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지만, 진실을 말한 양심의 상징으로 지금도 유럽 사회에서 깊이 기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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