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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랑 이슈 식견

윤석열 계엄 심리하는 민형배 대법관, 조선 왕실까지 이어진 여흥 민씨의 권력

by JadeWolveS 2025.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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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심판소장 민형배 대법관, 논란 이어가

윤석열 대통령은 법정 구속 상태에서 12월 3일 선포된 계엄이 헌법에 위배되는지를 두고 헌법재판소에서 심리를 받고 있습니다. 정치권은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하거나 지지하며 격렬한 대립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소장인 민형배 대법관은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사건을 심리하며 많은 논란을 낳고 있습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그가 이재명 대표와 가까운 사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이에 따라 재판의 공정성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또한, 민형배 대법관이 가입한 인터넷 카페에 성인 음란물이 게시되었음에도 이를 방관했다는 가짜뉴스가 퍼지면서 구설에 올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형배 대법관은 헌법재판소 소장으로서 대통령 관련 심리를 이어가고 있으며, 이번 헌법재판의 결과가 국가의 향방을 결정할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민형배 대법관은 여흥 민 씨로 알려져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여흥 민 씨 가문은 조선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가문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여흥 민 씨의 유명한 인물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윤 대통령 8차 변론 참석한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 (출처:연합뉴스)


태종을 왕으로, 아들을 성군으로 만든 원경왕후

원경왕후(元敬王后)는 조선 개국 초기의 혼란을 수습하고 정권을 안정시키며 훌륭한 국모의 모습을 보여준 인물입니다. 태종 이방원(李芳遠)은 고려 말 권문세족이었던 여흥 민 씨 가문의 민제의 딸, 원경왕후와 혼례를 치렀습니다. 그는 처가살이를 하며 아내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李成桂)는 공이 컸던 이방원을 세자로 책봉하지 않았고, 이에 불만을 품은 이방원은 아내 원경왕후의 지지를 받아 형제들을 제거하고 왕위를 차지했습니다.

태종 이방원은 형제들과의 갈등 속에서 아버지 이성계의 미움까지 받으며 권신들과도 치열하게 대립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험난한 과정에서 원경왕후는 남편을 곁에서 지켜주며 내실을 다지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또한 왕자들의 교육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식들에게 형제 간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가르쳤으며, 특히 세종대왕이 보위에 오르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세종 즉위 2년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태종 이방원이 조선을 강한 국가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현명한 아내 원경왕후의 내조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태종과 원경왕후 헌릉 출처:네이버 이미지


흥선대원군과 대립하며 고종을 장악한 명성황후

명성황후(明成皇后)는 조선 26대 왕 고종(高宗)의 왕비로, 조선 말기의 혼란 속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인물입니다. 조선 말기 세도 정치로 인해 백성들은 가난해지고 국정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은 아들 고종을 왕위에 올리며, 기존의 세도 가문들을 제거하고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그는 외척 세력의 개입을 막기 위해 정치적 기반이 약한 명성황후를 왕비로 선택했습니다. 명성황후는 성인이 된 고종이 여전히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결국 그녀는 흥선대원군에 반대하는 세력과 손을 잡고 시아버지를 정치에서 몰아냈으며, 이후 조선의 실권을 장악하게 됩니다. 당시 조선은 일본의 위협과 러시아의 남하 정책 속에서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은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명성황후는 조선을 개혁하기 위해 일본 세력을 끌어들였으나, 일본은 그녀의 기대와 달리 조선을 장악하려 했습니다. 이에 그녀는 러시아 세력을 이용해 일본을 견제하며 근대화를 추진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일본 세력은 1895년 을미사변(乙未事變)을 일으켜 궁궐에 침입, 명성황후를 살해하고 시신을 불태웠습니다. 이 사건 이후 조선은 국모를 잃고 더욱 쇠락의 길을 걸었으며, 결국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명성황후 출처:네이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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