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거품에 대한 경고가 지속적으로 들려오다
생성형 AI 투자 열기가 정점으로 치닫는 가운데 월가와 산업계에서 ‘거품’ 경고가 커지고 있다. 오픈AI·엔비디아·MS·오라클 등 빅테크가 초대형 투자·공급 계약을 촘촘히 맺으며 자금이 순환하는 구조가 형성됐다는 지적이다. 특히 공급업체가 고객사에 투자·대출을 제공하고 그 자금으로 자기 제품을 사게 하는 ‘판매자 금융’ 논란이 불거졌다. 실제 수요가 기대에 못 미치거나 현금흐름이 흔들리면 연쇄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경고도 뒤따랐다. 모건스탠리는 메모리·데이터센터 사이클이 “7회 말”에 접어들었다며 상호 소유·수익공유가 집중도를 키운다고 분석했다. IMF는 “AI 낙관론이 급반전하면 글로벌 충격”이라며 주가 밸류가 닷컴 붐 수준에 근접했다고 우려했다.
다만 현 국면은 현금창출력이 큰 빅테크가 주도하고 사용자·매출의 초기 궤적이 가파르다는 점에서 2000년대와 다르다는 반론도 있다. 하워드 마크스는 “밸류가 높아도 아직 광기 수준은 아니며, AI는 산업을 바꿀 기술”이라고 평가했다. 시장은 생산성 도약에 대한 기대와 과잉자본이 만든 허상에 대한 불안을 동시에 반영하며 혼조를 보이고 있다. AI가 버블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닷컴버블 시기에 비슷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떠오르는 기술, 닷컴
1990년대 중반, 인터넷은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것과 같은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월드 와이드 웹의 등장으로 누구나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이메일과 전자상거래는 일상의 풍경을 바꾸기 시작했다. 넷스케이프의 기록적인 IPO(1995년)를 시작으로, 인터넷 관련 기업이라면 무엇이든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보였다.투자자들은 ".com"이라는 도메인만 붙으면 열광했다. 아마존, 이베이 같은 혁신적인 기업들이 실제로 산업 구조를 뒤흔들고 있었고, 이는 "인터넷이 모든 것을 바꿀 것"이라는 믿음을 강화했다. "클릭 한 번으로 세상이 연결된다"는 구호 아래, 온라인 반려동물 용품 쇼핑몰부터 인터넷 식료품 배달까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비즈니스 모델이 쏟아져 나왔다. 통신 인프라 역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인터넷 트래픽이 매년 두 배씩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 속에서, 통신사들은 광케이블을 대륙과 대륙 사이에 깔아댔고, 네트워크 용량을 무한정 확장했다.
이 시기 시스코, 노텔, 루슨트 같은 통신장비 업체들은 그야말로 전성기를 맞이했다. 2000년 3월, 시스코는 한때 시가총액 세계 1위 기업에 올랐고, 노텔은 캐나다 증시 시가총액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였다. 이 열풍 뒤에는 "먼저 시장을 선점하라"는 전략이 있었다. 수익성보다는 성장성, 현재 이익보다는 미래 가능성이 중요했다. 실제로 많은 닷컴 기업들은 적자를 내면서도 "나중에 벌면 된다"는 논리로 공격적인 마케팅과 확장에 나섰다. 슈퍼볼 광고에 수백만 달러를 쏟아붓는 것이 당연시되었고, 화려한 사무실과 무료 간식은 스타트업의 상징이 되었다. 기술적 혁신은 분명 실재했다. 하지만 그 혁신이 언제, 어떻게 수익으로 연결될지에 대한 냉정한 계산은 뒷전이었다. "인터넷 시대"라는 거대한 서사 앞에서, 모두가 놓치면 안 된다는 공포(FOMO)에 사로잡혀 있었다.

닷컴 버블의 증상들
버블의 진짜 문제는 표면 아래 숨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교묘했던 것이 바로 '벤더 파이낸싱'이라는 금융 마술이었다. 시나리오는 이랬다. 신생 통신사업자가 네트워크를 구축하려 하지만 현금이 부족했다. 이때 노텔, 루슨트, 시스코 같은 장비 공급업체가 나타나 이렇게 제안했다. "걱정 마세요. 저희가 돈을 빌려드릴게요. 그 돈으로 저희 장비를 사세요." 고객사는 공급업체가 빌려준 돈으로 공급업체의 장비를 샀다. 공급업체는 장비 판매 매출을 기록하고, 주가는 치솟았다.숫자로 보면 노텔은 약 31억 달러, 루슨트는 무려 81억 달러, 시스코는 24억 달러를 고객사에 빌려줬는데 놀라운 수준이었다. 이는 단순한 판매 촉진이 아니라, 수요 자체를 인위적으로 창조하는 행위였다. 마치 자기 돈으로 자기 상품을 사는 것과 다름없었지만, 회계장부 상으로는 멋진 매출 성장으로 기록되었다.더 기가 막힌 것은 이 돈의 순환 구조였다. A라는 통신사가 노텔로부터 대출을 받아 장비를 샀다. 노텔은 매출 증가를 발표하고 주가가 올랐다.
그러면 A사는 상승한 주식을 담보로 또 다른 자금을 조달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많은 장비를 샀다. B사와 C사도 같은 게임에 뛰어들었다. 공급업체들은 서로 경쟁하듯 더 많은 금융을 제공했다. 실제 통신 서비스 수요와는 무관하게, 장비 판매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문제는 이 순환이 영원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통신사들이 깔아놓은 광케이블 용량은 실제 수요의 몇 배를 초과했고, 인터넷 서비스 수익은 예상만큼 빠르게 증가하지 않았다. 고객이 없는데 인프라만 과잉 공급된 상황이었다. 통신사들의 현금흐름이 악화되기 시작했고, 대출 상환은 점점 어려워졌다. 2000년을 기점으로 도미노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한두 곳의 통신사가 부도나자, 장비 대금을 회수할 수 없게 된 공급업체들의 재무제표에 대규모 부실채권이 쌓여갔다. 새로운 주문은 급감했고, 그동안 부풀려졌던 매출의 실체가 드러났다. 노텔의 주가는 2000년 124달러에서 2002년 0.47달러로 추락했고, 결국 2009년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루슨트 역시 수만 명을 해고하며 휘청거렸고, 한때 세계 최고 가치를 자랑하던 시스코의 시가총액은 90% 가까이 증발했다. 벤더 파이낸싱은 일종의 회계 착시였다. 미래의 불확실한 수익을 현재의 확정된 매출처럼 포장했고, 실제 수요와 공급의 괴리를 금융으로 메웠다. 모두가 음악이 멈추지 않을 것처럼 춤을 췄지만, 음악은 어느 날 갑자기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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