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발전에 은밀하게 무기 배치해야하는 승리하는 시대
컨테이너 무장 시스템은 민간 컨테이너에 순항미사일·다연장 로켓·탄도미사일·대공미사일·핵무기를 은닉해 기습 발사할 수 있는 신개념 무기다. 2010년 러시아의 ‘클럽-K’를 시작으로 중국·이란·북한이 유사 시스템을 개발·배치했고, 미국도 Mk.70 PDS와 핵무기 보관용 ‘모바일 볼트’를 포함해 표준 컨테이너 플랫폼을 군사적 기습 발사기지로 활용 중이다. 컨테이너 위장 무기는 항만 야적장, 선박, 화물기·열차·트럭 어디든 은닉이 가능해 감시를 어렵게 하고, 제네바협정의 비전투원 보호 원칙을 사실상 무력화시킨다.
특히 미국의 모바일 볼트는 B61 전술핵폭탄 4발을 일반 컨테이너에 감춰 어디서나 은밀하게 배치·전개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한다. 미군의 민간 화물기·수송기가 떠오르는 모든 공항이 잠재적 핵무기 기지로 전환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러한 모호성을 전략적 카드로 활용하면 한국도 핵무기 재배치 없이 북한·중국 견제용 압박 수단을 확보할 수 있다는 논의가 일고 있다. 그러나 컨테이너 무장 시스템의 확산은 전통적 전쟁 규칙과 비전투원 보호의 신뢰를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이처럼 무기를 은밀히 숨겨 승리를 거둔 전략은 인류 역사 속에서도 반복되어 왔다. 그 대표적 사례로, 기동력과 위장술로 제국을 농락한 스키타이의 전술을 살펴보자.
유라시아 지역을 호령했던 스키타이
기원전 7세기부터 3세기까지 유라시아 대초원을 지배한 스키타이는 단순한 유목민 집단이 아니었다. 그들은 흑해 연안에서 시베리아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에서 독특한 문명을 꽃피웠고, 당대 최강의 군사력으로 주변 정착민들을 압도했다.스키타이의 힘은 무엇보다 기동력에서 나왔다. 그들은 모든 성인 남성이 말을 타고 활을 쏠 수 있는 기마 궁수였다.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따르면, 스키타이는 "도시도 성벽도 없이 살면서도"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대왕조차 굴복시킬 수 있었다. 이는 그들이 전통적인 공성전이나 정면 대결을 피하고, 끊임없는 이동과 기습으로 적을 교란시켰기 때문이다. 이들의 전술은 매우 교묘했다. 적이 공격해오면 후퇴하면서 계속 화살을 쏘아댔고, 적이 지치면 다시 돌아와 급습했다. 이른바 '파르티아 샷'이라 불리는 이 전술은 후에 흉노와 몽골군까지 이어지는 유목민 전투법의 원형이 되었다. 스키타이는 단순히 말을 잘 타는 것이 아니라, 말과 인간이 하나가 된 듯한 완벽한 기동 전술을 구사했다.
상인이면서 군사였던 스키타이 기마병
그들의 영향력은 군사적 측면에 그치지 않았다. 스키타이는 흑해와 중앙아시아를 연결하는 교역로의 핵심 역할을 했다.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스키타이로부터 곡물과 모피, 금을 수입했고, 대신 와인과 공예품을 수출했다. 이런 교역 관계는 스키타이가 단순한 약탈 집단이 아니라 고도로 조직화된 상인집인이기도 했다. 스키타이 사회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직업의 경계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군인과 상인, 목동은 완전히 다른 직업이지만, 스키타이에게는 이런 구분이 무의미했다. 한 사람이 동시에 전사이자 목동이며 상인이었다.
이런 현상이 가능했던 이유는 유목민의 생활 방식 자체에 있었다. 스키타이는 계절에 따라 목초지를 찾아 이동하면서 살았는데,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교역이 이루어졌다. 한 지역에서 얻은 특산물을 다른 지역으로 가져가 교환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동시에 이들은 항상 무장한 채로 이동했는데, 이는 야생동물이나 적대 세력으로부터 자신과 가축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스키타이의 이런 특성은 정착민들에게는 매우 위험한 요소였다. 평화롭게 교역하러 온 것처럼 보이는 스키타이 일행이 언제든 무력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군인과 상인 이중성이 스키타이를 강력한 군대로 만들다
실제로 스키타이는 "유리할 때는 싸우고, 불리할 때는 도망간다"는 실용적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 이들에게 전투는 명예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생존과 이익을 위한 수단이었다.더욱 중요한 것은 스키타이 사회 자체가 지배 엘리트 중심의 유목 연합체 성격을 띠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중앙집권적인 국가 체제가 아니라 느슨한 연맹 형태로 조직되어 있었고, 각 집단은 상당한 자율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구조에서는 평상시 상업 활동과 군사 행동 사이의 경계가 더욱 모호해질 수밖에 없었다. 흥미롭게도 이런 "상인-전사"의 이중 정체성은 스키타이만의 특징이 아니었다. 후에 등장한 흉노나 돌궐, 몽골 등 다른 유목민 집단들도 비슷한 특성을 보였다. 이는 유목민 문화의 본질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에게는 생산과 교역, 그리고 전쟁이 모두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였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역할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곧 경쟁력이었다. 이런 이중성이야말로 수 세기 동안 유라시아 초원을 지배할 수 있게 한 스키타이의 진정한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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