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청랑 세상 식견/청랑 이슈 식견

정부 전산센터 화재로 행정 전산 마비 사태, 조선왕조 실록이 보여준 위기 관리 지혜

by JWS 2025. 9. 30.
반응형

ㅈ화재로 보여주는 IT강국 민낯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중단된 647개 정부 행정정보시스템 가운데 정부24·우체국금융 등을 포함한 47개 서비스가 복구됐다고 29일 밝혔다. 복구율은 7.3%로, 윤호중 본부장(행안부 장관)은 세종청사 중대본 회의에서 대국민 사과와 함께 “전소된 7-1 전산실 96개 핵심 시스템은 대구센터 민관협력 클라우드로 이전 복구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주말 이후 민원 수요 급증을 예상하며 부처·지자체 합동으로 불편 최소화 대책을 논의해 시행하기로 했다. 중대본은 복구가 이뤄질 때마다 포털 공지와 보도자료로 서비스 재개 현황을 안내하겠다고 했다. 다만 전소 시스템 96개는 이전·재가동까지 약 2주가 소요될 전망으로, 전체 정상화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윤 본부장은 회의 후 대구센터로 이동해 이전 준비 상황을 점검할 계획이다. 정부는 정부합동 민원센터(110), 지역 민원센터(120)와 민원 전담지원반을 가동해 현장 불편 해소에 나선다. 기관별 정확한 안내를 위해 전소 시스템 목록을 공유하고, 대체 업무 처리 지침도 병행 제공한다. 이날 오전 8시30분 기준 복구 서비스는 46개에서 47개로 추가됐다. 정부는 단계적 복구와 병행해 장애 원인 조사 및 재발 방지 대책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조선왕조도 화재와 전쟁에서 왕실의 기록을 보관하고자 여러군데로 분산하여 사고를 보관하였다.

28일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인해 불에 탄 리튬이온 배터리가 소화수조에 담겨 있다.  지난 26일 정부 전산시스템이 있는 국정자원에서 무정전·전원 장치(UPS)용 리튬이온배터리 화재가 발생해 정부 전산 서비스가 대규모로 마비된 바 있다.


실록 보존의 위기, 사고 분산 보관 제도를 마련하다

조선 초기 왕조실록은 한양 춘추관에만 보관되는 단일 보관 체계였다. 그러나 이러한 집중 보관 방식은 화재나 전란 등 예기치 못한 재난 상황에서 국가의 귀중한 역사 기록이 한순간에 소실될 위험을 안고 있었다. 실제로 세종과 세조 연간에 실록 소실과 화재를 경험하면서, 조정은 실록 보존 방법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세종 때인 1440년 충주에 첫 외사고가 설치되면서 분산 보관의 시도가 이루어졌으나, 이는 제도적으로 체계화되지 못한 채 일회성에 그쳤다. 실록은 왕조의 정통성과 역사적 기록을 담보하는 핵심 자산이었기에, 그 보존 문제는 단순한 행정적 과제를 넘어 국가 존립의 문제로 인식되었다.

특히 외적의 침입이나 내란, 자연재해 등 다양한 위기 상황에서 실록이 완전히 사라질 경우, 왕조의 역사적 정당성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위기의식 속에서 성종 10년인 1479년, 조선 조정은 본격적인 외사고 제도를 확립했다. 전주, 성주, 충주, 개성 등 지방 네 곳에 외사고를 추가로 설치하면서, 춘추관 내사고와 함께 총 5부의 실록을 분산 보관하는 체계를 갖추었다. 외사고는 전략적으로 산속이나 인적이 드문 곳에 위치하도록 설계되었는데, 이는 전란 시 적의 접근을 차단하고 화재 등 재난으로부터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였다. 성종대의 이러한 제도화는 조선왕조실록 보존 체계의 제도적 출발점이 되었으며, 이후 조선왕조 전체 기간 동안 실록 보존의 기본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임진왜란 이후 사고 재편, 실록 보존 원칙을 강화하다

임진왜란은 조선의 사고 체계에 결정적 시험대였다. 전쟁 중 대부분의 사고가 소실되었으나, 전주사고에 보관되었던 실록만이 유일하게 보존될 수 있었다. 전주사고에는 태조실록부터 명종실록까지의 기록이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었고, 전쟁 중 안의, 손홍록 등의 헌신적 노력으로 이 귀중한 기록들이 지켜졌다. 전주사고본의 생존은 조선왕조의 역사적 연속성을 지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전란 이후 조정은 전주사고본을 바탕으로 실록을 다시 4부 제작하였고, 사고의 위치를 전면적으로 재편했다. 기존의 외사고들이 전란에 취약함을 드러냈기 때문에, 더욱 깊은 산속과 접근이 어려운 지역으로 사고를 이전하는 원칙을 세웠다. 이에 따라 오대산(강원 평창 월정사), 태백산(경북 봉화), 적상산(전북 무주), 정족산(인천 강화) 등이 새로운 외사고 소재지로 선정되었다. 이들 사고는 모두 산악 지형에 위치하여 외적의 침입과 화재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했으며, 사찰이나 산성 등 기존 시설을 활용해 실록 보관에 적합한 환경을 조성했다.

이러한 재편을 통해 조선의 실록 보존 원칙은 더욱 강화되었다. 춘추관 내사고와 네 곳의 외사고로 구성된 5부 체제는 조선 후기 내내 유지되었으며, 각 사고는 엄격한 관리 규정 아래 실록의 안전을 책임졌다. 그러나 이후 역사 속에서 실록은 또 다른 시련을 겪게 된다. 일제강점기에는 오대산 사고본이 1913년 일제에 강탈되어 일부만 반환되었고, 6·25전쟁 때는 적상산 사고본이 북한으로 이관되어 현재까지 평양 김일성종합대학 도서관에 보관 중이다.현재 조선왕조실록 원본은 남북한에 분산되어 있으며, 남한에서는 국립고궁박물관, 국가기록원 부산 역사기록관, 월정사 실록박물관, 서울대박물관 등에서 각각의 사고본을 관리하고 전시하고 있다. 성종대에 확립되고 임진왜란 이후 강화된 사고 분산 보관 제도는 수백 년의 세월과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인류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보존해낸 지혜로운 제도적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청랑이 추천하는 다른 글을 읽고 싶다면 클릭하세요!
 

서울 지하철 5호선 방화로 화재, 참사를 막은 '시민의 힘' : 청랑

베테랑 기관사와 시민들이 지하철 방화 참사 막아서울 지하철 5호선에서 60대 남성 A씨가 방화를 저질렀지만,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와 달리 대형 인명 피해는 없었습니다. 이는 베테랑 기관사

jwsbooks.com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