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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이완용 후손 땅 팔아 수십억 이익, 과거 비슷한 인물은?

by JWS 2025.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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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 후손은 선대의 땅을 찾아 큰돈을 벌다

이완용의 증손자 이윤형이 과거 친일로 축적된 토지를 처분하고 해외로 출국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다시금 일제 협력자 후손의 재산 환수 문제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해당 토지는 일제 강점기 이완용이 보유했던 땅으로, 해방 이후 한차례 환수되었으나 법적 근거 미비로 후손에게 다시 돌아갔습니다. 이윤형은 이를 1997년 약 30억 원에 매도했고, 이후 해당 부지는 대규모 재개발 사업에 포함됐습니다.

법원은 당시 몰수에 법적 근거가 없었다며 후손의 소유권을 인정했지만, 이후 제정된 '친일재산 환수법'은 그에게 소급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이완용은 일제강점기 전국에 걸쳐 약 676만 평에 달하는 부동산을 소유한 대표적 친일파였으며, 실질적으로 환수된 자산은 0.05%에 불과해 제도적 한계가 뚜렷했습니다. 다른 국가는 나라를 팔아먹은 인물에게 어떻게 했을까요?

이완용.<위키백과 제공, 연합뉴스>


나치에 호가호위한 피에르 라발

피에르 라발은 제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항복한 뒤 세워진 비시(Vichy) 정권에서 수상을 지낸 인물로, 대독 협력을 주도한 대표적 정치가였습니다. 그는 독일과의 협력을 “프랑스의 이익을 위한 현실적 선택”이라 주장하며 나치의 요구에 따라 유대인을 강제 이송하고, 프랑스 국민을 독일의 전쟁 산업에 노동자로 제공하는 데 적극 협조했습니다. 라발은 대내적으로는 독재 정치를 강화했고, 대외적으로는 나치의 꼭두각시 정부 역할을 자처하며 전쟁 중 큰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종전 후 프랑스 국민들 사이에서 ‘국가 반역’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비시 정권의 수상을 지낸 피에르 라발


나치가 무너진 후 피에르 라발의 최후

1944년 프랑스가 해방되고 나치가 패망하자, 피에르 라발은 체포되어 프랑스 법정에 회부되었습니다. 재판에서는 그의 독일 협력 행위와 전시 정책에 대한 책임이 집중적으로 다뤄졌으며, 그는 끝까지 자신의 행동을 ‘프랑스를 위한 결단’이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라발은 1945년 10월, 반역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총살형에 처해졌습니다. 그의 처형은 단순한 개인 처벌을 넘어, 나치 협력자에 대한 단호한 청산 의지를 보여준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이후 그의 가족 또한 일부 재산을 몰수당했으며, 프랑스는 국가 반역에 대한 도덕적·법적 책임을 법률적으로 구현하는 전례를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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