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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시진핑 실각설 장유샤의 군 장악? 소련 해체와 닮은 꼴

by JWS 2025.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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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권력은 없다 시진핑 주석의 위기 

중국에서 시진핑 주석이 군과 당의 실권을 상실했다는 보도가 확산되며 ‘천하대란’설이 중화권 언론을 뒤덮고 있다. 시 주석의 직계인 먀오화와 허웨이둥 등 푸젠 방계 고위 군 간부들이 연이어 낙마하며 군 내 장유샤를 중심으로 한 반시진핑파가 실권을 장악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5월 열린 비공개 정치국 확대회의에서는 시진핑의 전면 혹은 단계적 퇴진을 논의했고, 8월 4중전회에서 결론을 낼 예정이다.

특히 후진타오, 원자바오 등 1942년생 당 원로들과 공청단 계열의 복귀가 본격화되고 있다. 장유샤는 시진핑이 임명한 장군 100여 명의 부패 혐의를 낭독하며 군내 시진핑 세력을 무력화했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쩌둥의 금언처럼, 이번 사태는 군권 교체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시진핑은 현재 꼭두각시로 전락했고, 이후 권력 공백 속에서 새로운 암투가 벌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시진핑은 고르바초프의 전철을 밟을까?

중국 주석 시진핑 출처:연합뉴스


개혁을 시도한 고르바초프 쿠테타로 권력 상실하다

1985년 비교적 젊은 나이에 집권한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을 통해 소련의 경직된 경제와 정치 시스템을 개혁하고자 했다. 그는 중앙집권체제를 완화하고, 각 공화국의 자치권을 확대하며, 자본주의적 요소 일부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특히 1991년 8월 20일 체결 예정이던 신연방조약은 연방 소속 공화국들의 자율성을 강화하고, 국가 권한을 분산시키는 내용이었는데, 이는 곧 보수 강경파의 반발을 불러왔다.

이들은 국가의 분열을 우려하며 기존 권력 체계를 유지하고자 했고, 결국 고르바초프를 크림 반도 별장에 감금한 뒤 국가비상사태위원회를 조직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하지만 시민들의 저항과 옐친의 지도력, 군 내부의 이탈로 쿠데타는 실패했고, 이로써 고르바초프의 개혁은 결정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이 시점은 소련 내부에서 개혁이 정점에 이르렀지만, 동시에 체제 해체의 문턱에 다다른 분수령이었다.

소련연방 대통령 고르바초


고르바초프 소련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다

쿠데타가 실패한 이후, 고르바초프는 정치적 권위를 잃고 실질적인 권력도 상실하게 되었다. 군대는 더 이상 중앙의 명령에 일사불란하게 따르지 않았고, 공산당은 활동 정지 및 해산으로 붕괴되었다. 특히 옐친이 주도한 러시아 공화국 중심의 독립 선언과 권력 재편은, 고르바초프를 연방 대통령이라는 명목상 지위를 고립시켰다. 발트 3국을 비롯한 각 공화국들이 연달아 독립을 선언하며 신연방조약은 사실상 무의미해졌고, 이는 결국 1991년 12월 소련 해체로 이어졌다. 이처럼 소련은 고르바초프 체제하에서 군과 당의 통제력이 약화되며 붕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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