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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랑 인재 식견

가난한 고아 출신 추남 주원장

by JadeWolveS 2022.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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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을 통해 강인한 정신력을 키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인물 중에는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례가 많다. 일반적으로 가난은 많은 기회를 박탈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위대한 인물들은 가난을 배움의 기회이자 자신을 단련시키는 기회로 삼는다. 가난에 짓눌리거나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밑바닥부터 기본을 다지면서 실패와 좌절을 이겨내는 강인한 정신력을 키워나간다. 밥 한 끼조차 해결이 어려웠던 시절에도 그들은 가난을 통해 생존하는 법을 배우면서 신분 상승을 꿈꾸는 외적 동기로 삼는다. 가난하므로 포기한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고 단지 불편했을 뿐이었다. 가난을 부끄럽게 생각한다면 고아 출신인 명()의 태조 주원장(朱元章)의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명 태조 주원장 출처:고궁박물관]

가난을 피하고자 승려가 된 주원장

명사 본기에 명 태조 주원장의 조상들은 일정한 터전이 없는 유랑민이었다고 전한다. 주원장은 1344년 큰 가뭄과 메뚜기 피해로 영양실조인 상태에서 전염병으로 부모님과 큰형을 잃게 되었으며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당시 17세였던 주원장은 먹고살기 위해 집 근처 황각사에 들어가 탁발승이 되었다. 탁발은 여러 집을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동냥하는 것을 말한다. 주원장은 무려 4년 동안이나 탁발승 노릇을 호구지책으로 삼았다.

 

 

먹고살기 위해 군인이 된 주원장

탁발승으로 간신히 끼니를 때우던 주원장은 원() 나라의 혼란을 틈타 일어난 홍건적의 무리 중 지역적으로 가까웠던 곽자흥(郭子興)의 수하로 들어갔다. 주원장은 굶어 죽든 싸우다가 죽든 죽는 것은 같으니 당장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살생을 금지하던 승려에서 목숨을 뺏는 군인으로 신분을 바꾼 것을 보면 주원장의 우선순위는 생존이었다.

추남 주원장, 간첩으로 오해받기도

주원장은 중국 황제 중에 외모가 추하기로 손에 꼽힌다. 승려의 신분을 버리고 곽자흥을 제 발로 찾아왔지만, 추한 외모 때문에 주원장은 간첩으로 의심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탁발승으로 집마다 동냥하던 경험 때문에 낯짝이 두꺼워진 주원장이었다. 밧줄에 묶인 주원장이 미동도 하지 않자 이런 모습을 유심히 지켜본 곽자흥은 주원장을 범상치 않게 여겨 사병 10명을 관리하는 자리에 앉혔다. 전장에서 항상 용감하게 싸우고 글까지 읽을 줄 아는 주원장은 곽자흥의 총애를 받았다. 곽자흥이 죽자 주원장은 곽의 세력을 거머쥐었고 이는 명나라를 세우는 기반이 되었다.

 

가난, 고아, 추한 외모, 미천한 신분을 가진 주원장.
이런 어려운 환경이 오히려 주원장에게 살아남고자 하는 본능을 일깨웠을 것이다.
하층민 출신 주원장이 명 태조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자신에게 주어진 척박한 환경에서 단련이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역사적 인물에 관심이 있다면 청랑이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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