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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랑 인재 식견

술을 이용할 줄 알았던 황제

by JadeWolveS 2022.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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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태조 조광윤의 술자리 활용법

'포도주에 진실이 있음을'이라는 라틴어 속담이 있다. 친구끼리 깊은 우정을 쌓거나 남녀 사이에 진심을 전하게 돕는 조력자 역할을 하는 술. 역사서를 들춰보면 술자리를 통해서 큰일들이 성사된 사례가 적지 않다. 중국 황제 중에서 술자리를 이용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개국공신을 정리한 왕이 있다. 바로 중국 송나라 태조 조광윤(趙匡胤)이다. 애주가인 그가 술자리를 통해 자신의 고민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알아보자.

[송 태조 조광윤 출처:네이버]

술에 취해 얼떨결에 황제 된 조광윤

가난한 군인의 아들인 조광윤은 21세 때 집을 나와 천하를 떠돌아다니다 곽위(郭威)라는 절도사의 부하가 되었다. 곽위는 950년에 후한(後漢)을 무너뜨리고 후주(後周)의 태조가 되었다. 이때부터 조광윤의 출셋길이 열리기 시작했으며, 근위대장의 신분으로 수도 개봉에서 근무하다가 태자 시영(柴榮)의 눈에 들어 그의 친구이자 오른팔이 되었다. 그리고 시영이 954년에 후주 세종(世宗)으로 즉위하면서 조광윤은 가장 유력한 장군으로 떠올랐다. 오대십국(五代十 國) 최고의 명군이던 세종이 959년의 거란(契丹) 원정길에 병사하면서 일곱 살에 불과했던 시종훈(柴宗訓)이 공제(恭帝)로 즉위했다. 960년 개봉 북쪽의 진교역에서 거란군의 남하를 막으려고 진을 치고 머물다가 술에 취해 잠든 조광윤에게 부하 장수들이 억지로 황제의 옷을 입히고는 황제로 추대했다. 조광윤의 군대는 즉시 진교에서 회군하여 황궁을 점령했다. 그리고 공제(시종훈)의 양위를 받아 즉위하고, 국호를 송이라고 칭했다. 스무 살 때만 해도 당장 어떻게 하루를 살아갈지 기약이 없던 조광윤이 술에 취해 있다가 얼떨결에 3백 년 역사를 가진 송 왕조의 태조가 되었다.

 

술자리에서 진심을 전해 근심을 없애다

황제가 된 몇 달 후, 조광윤은 진교에서 자신을 황제로 받든 석수신(石守信), 왕심기(王審琦), 고희덕, 장령탁, 조언휘 5명의 개국공신을 불러 술자리를 가졌다. 그리고 거나하게 취했을 무렵 이렇게 말을 꺼냈다. “경들이 없었더라면 어찌 지금 짐이 이 자리에 있었겠소? 진심으로 감사하오. 하지만 한편으로 불안하기 짝이 없소. 물론 짐은 경들을 전적으로 믿지만, 경들 중 누군가의 부하들이 언젠가 딴마음을 먹고 술 취한 주군에게 황제의 옷을 입힐지 알 수 없지 않소? , 인생이란 무엇이오? 절벽 틈을 달리는 말처럼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을. 모두 하나같이 부귀를 원하지만, 얼마 안 되는 삶을 편안히 살다가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 그것뿐인데, 그나마 지키기 힘드니 말이오. 그러니 경들은 각자의 병권과 지위를 포기하고 고향으로 내려가면 어떻겠소? 그러면 여생은 아무 염려 없이 평안할 수 있을 것이오.”라고 말했다. 개국공신들은 조광윤의 뜻에 따라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 지방으로 내려갔다. 이 일을 두고 술잔을 들면서 공신들의 병권을 없앴다라고 하여 배주석병권(杯酒釋兵權)’이라 불렀다. 조광윤은 중국 역사상 가장 많은 나라가 단기간에 교체되던 오대십국의 혼란기에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본인의 사후에 일어날지도 모를 후환을 없애버렸다.

 

 술을 마시며 전하는 진심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술을 마시면서 나라의 근심까지 해결하고
문제를 풀어나갈 줄 알았던 인물.

송 태조 조광윤은 ‘술 정치’로 나라를 경영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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