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의 재등장
나폴레옹(Napoleon Bonaparte I, 1769~1821)이 이끈 프랑스군은 1812년 러시아 원정에 실패한 이후 각 지역의 민족주의적 반란에 부닥쳤다. 그리고 마침내 1814년에는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영국군으로 구성된 연합군에게 파리를 점령당했다. 나폴레옹은 퇴위 되어 지중해의 작은 섬 엘바(Elva Island)로 유배되었다. 그리고 루이 16세(Louis XVI, 1754~1793)의 동생인 루이 18세(Louis XVIII, 1755~1824)가 황제로 즉위하면서 왕정이 복고 되었다. 하지만 프랑스 시민들은 무능한 루이 18세에 실망, 나폴레옹을 다시 옹립하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1815년 2월 나폴레옹은 엘바섬을 탈출하여 칸(Cannes)에 상륙하였고 충직한 부하 1,000여 명과 함께 파리로 북상하였다. 루이 18세는 관군을 보내 진압하게 하였으나 관군이 오히려 나폴레옹에 합세해 버렸다. 루이 18세는 영국으로 도망가고 나폴레옹은 공화주의자와 농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20여 일 만에 파리에 입성, 다시 권력을 장악했다. 하지만 당시 각국은 나폴레옹을 타도하기로 협약을 맺었고 동맹국의 병사 수도 70만 명을 넘었다. 나폴레옹은 동맹국들의 정치적 이해가 다르므로 초전에 이들을 각개 격파하면 관계를 무너뜨릴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해 6월, 나폴레옹은 12만 5,000명의 프랑스군을 이끌고 웰링턴(Arthur Wellesley Wellington, 1769~1852)이 지휘하는 약 9만 5,000명의 영국군과 블뤼(Bluecher, 1742~1819)가 지휘하는 약 12만의 프로이센군을 격파하기로 결심했다. 6월 16일 리니에서 프로이센군을 격파해 퇴각시키고, 6월 18일 워털루에서 영국군에 대한 총공격을 개시하였다. 전투는 프랑스군의 승리로 기우는 듯했지만, 나폴레옹은 예상치 못한 2가지 변수를 맞닥뜨려야 했다.
전투 앞두고 치질 수술한 나폴레옹
나폴레옹은 말을 타고 다니며 오랫동안 책을 읽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런 습관 때문에 치질에 걸렸다. 나폴레옹은 하필 연합군과의 전쟁 중 급성 치질로 상태가 악화되었다. 고통이 심했던 나폴레옹은 의사 도미니크 장 라레를 불러 워털루 전투가 있기 하루 전날 수술을 받았다. 당시에 치질 수술은 항문 부위를 절개하여 고름을 짜내는 방식이었다. 마취제도 없이 수술을 감행한 나폴레옹은 고통을 참으며 전쟁에 임했다. 건강 상태가 나쁜 나폴레옹은 평소와 다르게 신경질적이며 불안한 상태에서 전쟁을 수행하게 된다.
폭우로 전쟁 패배한 나폴레옹
나폴레옹은 1815년 6월 16일 리니에서 프로이센군을 격파했다. 나폴레옹은 군사 수가 적었음에도 프랑스군을 나눠 프로이센군을 추격하게 했다. 군사가 적은 프랑스군의 병력을 나눈 것은 나폴레옹의 전략으로는 보기 드문 일이었다. 6월 17일 오전까지만 해도 프랑스군이 영국군을 상대하기에는 날씨가 좋았다. 프랑스군의 화력이 영국군보다 좋았기에 전쟁이 시작된다면 프랑스군의 승리로 끝날 수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내린 폭우로 다음날 전쟁을 치르게 된다. 비로 인해 땅이 질척이는 워털루는 대포를 장전하기가 힘들었다. 수적으로 불리한 프랑스군에게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기 위해서는 화력이 중요했으나 폭우의 방해를 받고 말았다. 6월 18일 전쟁은 프랑스군이 유리하게 시작했지만, 날씨의 영향과 퇴군한 프로이센군의 기습까지 겹치며 나폴레옹은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프랑스 황제까지 올라 유럽 제국을 정복하고 호령했던 나폴레옹.
강제 퇴위 후 엘바섬에서 갇혀 지내다 탈출에 성공, 재기를 노렸으나
건강과 날씨의 도움을 받지 못해 워털루 전쟁에서 패함으로써 완전히 주저앉고 말았다.
만약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쟁에서 승리했다면 세계사의 흐름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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