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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랑 이슈 식견

조선시대의 수험생들

by JadeWolveS 2023.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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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경쟁률 과거 시험

조선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를 뽑는 과거시험은 3년마다 치러졌다. 과거시험의 으뜸은 대과였다. 대과의 최종 합격자는 33명이었고, 이들은 고위직에 오를 가능성이 컸다. 조선 초기 인구는 600만 명. 양인들까지 시험 칠 권한이 주어졌기에 과거시험에 합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합격률이 낮다 보니 합격자 중에 최고령자가 85세인 기록도 있다. 과거시험의 준비 과정부터 지방 출신과 빈부격차가 느껴졌던 당시 수험생들의 모습은 입시와 취업 준비에 바쁜 요즘 젊은 세대와 흡사하다.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의 시대상을 살펴보자.

[조선 과거시험 지원학과 출처:네이버]

자식 과거시험 준비에 부모 등골 휘어

조선의 과거시험 대과의 합격률이 너무 낮았다. 그렇다 보니 양반 집안 자녀들은 7~8세부터 시험 준비에 들어가야 했다. 과거시험을 치르기 위해 외워야 하는 한자가 무려 40만 자가 넘었다고 한다. 수험생은 외워야 하는 문구는 대나무에 적어서 휴대하고 다녔는데 이를 '죽천'이라 불렀다. 또 과거시험이 여러 번 시행 되면서 시험에 나온 문제들만 추려낸 기출문제집도 나왔다. 시험 준비가 끝난 전국 팔도의 수험생들은 한양으로 몰려들었다. 수험생 중에도 빈부의 격차가 있기 마련. 돈 많은 지방 출신 양반은 노비를 데리고 다니며 가는 길목마다 있는 주막에서 숙식을 해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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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가난한 수험생은 무거운 솥과 쌀, 반찬 등을 책과 함께 챙겨 가야 했다.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이라 가장 먼 지역에 사는 수험생은 한양까지 가는데 무려 2개월이나 걸렸다고 한다. 그러니 한양의 과거 시험장에 자식을 보내야 하는 부모 입장에서는 경제적 부담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요즘에도 형편이 어려운 부모들이 자녀교육비를 대려면 등허리가 휜다는 말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자녀를 출세 시키려면 부모의 등골 빠지기는 마찬가지인 셈이라고 할까.

 

 

과거시험 노골적 부정행위 다반사

어렵사리 한양에 와서 과거시험을 치르는 수험생은 꼭 합격하고 싶은 마음에 다양한 부정행위를 저질렀다고 한다. 시험 기출 문제 답안을 작은 쪽지에 적어서 보는 것은 애교 수준. 어떤 사람은 책을 찾아보면서 답을 쓰거나 옆 사람과 의논하면서 문제를 풀기도 했다. 또 신분 확인이 어렵다는 점을 노려 대리 시험을 치게 하거나 돈을 주고 실력이 출중한 자를 데려와 옆자리에 앉힌 뒤 답을 불러주면 적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일일이 확인하는 게 쉽지는 않을지라도 조선의 과거시험 부정행위 관리가 이렇게 허술했나 싶을 정도다. 이처럼 수험생의 부정행위는 예나 지금이나 근절시키기는 어려운가 보다.

조선의 과거시험 대과에 합격하는 것은 출세의 지름길.
그러나 경쟁률이 치열해 합격자 명단에 포함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할 정도로 어렵기만 했다.
또 과거시험을 준비하고 치르는 과정에서도
부모는 등골이 휠 정도의 경제적 부담을 안아야 했고
한양에 모여든 수험생들은 갖가지 시험 부정행위를 저지르기도 했다.
입시와 취업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겐
고금을 막론하고 숱한 ‘고난의 행군’을 거쳐야 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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