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때문에 계엄했다는 조롱받은 한국
세계 언론은 12월 3일 대통령의 계엄을 특보로 알렸습니다. 대한민국 시민들은 계엄군을 국회에서 막아냈고, 과거와 같은 계엄 사태는 발생하지 않으며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빛났습니다. 그러나 한국을 바라보는 해외의 시선은 조롱으로 돌아왔습니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계엄을 선택한 대통령이라는 조롱까지 받고 있습니다. 또한 계엄사태 이후 불안정한 정치 상태로 한국 경제 신뢰도가 떨어지며 애꿎은 시민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여당은 영부인 의혹으로 대통령에게 특검을 요구하였고, 정국은 고착 상태가 되었습니다. 명심보감 부행편에 "어진 부인은 남편을 귀(貴)하게 하고, 악한 부인은 남편을 천(賤)하게 하느니라"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어떤 아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남편의 인생이 어떻게 바뀌는지 알아봅시다.
노름꾼 남편을 감화시킨 오(吳)나라의 여영(呂榮)
여영은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 사람으로 항상 부지런히 일하고 시어머니를 극진히 봉양하며 집안일을 잘 돌보는 현모양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 허승은 학문을 닦을 것을 게을리하고, 노름을 비롯해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고 다녔습니다. 여영은 남편의 잘못된 행동을 고치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헛수고였습니다. 장인은 사위에 대한 분노와 미움이 쌓이고 쌓여 자신의 딸을 다른 사람에게 시집보내려 했습니다. 그런데 여영은 지아비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부부는 운명으로 만난 사이입니다. 부부의 의리는 배반할 수 없습니다.”
허승은 자신을 끝내 배반하지 않는 아내 마음에 감격하였습니다. 이후 그는 스스로 학문에 힘쓸 것을 결심하게 되었고, 먼 길을 떠나 스승을 찾아 배워서 온 나라에 이름을 떨치는 학자가 되었습니다.
로마 공화국으로 돌아가는 계기를 만든 로마황제 부인 작은 툴리아
작은 딸 툴리아(Tullia Minor)는 로마 왕 세르비우스 툴리우스의 두 딸 중 하나로, 야심 많고 냉혹한 성격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툴리아는 처음 조용하고 온화한 성격의 아룬스와 결혼했으나, 자신과 성격이 정반대인 남편에게 불만이 많았습니다. 동시에 자신의 언니인 툴리아 마이오르(Tullia Major)가 야심 넘치는 루키우스와 결혼한 것을 보고, 자신이 루키우스와 함께해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작은 툴리아는 남편을 살해하고, 루키우스 역시 자신의 아내였던 툴리아 마이오르를 죽이게 만들어, 둘은 재혼했습니다. 이후 툴리아는 루키우스를 부추겨 그가 로마의 왕이 되도록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녀는 아버지 세르비우스 툴리우스의 왕권을 빼앗기 위해 남편과 함께 반란을 계획했고, 결국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반란이 시작되자 세르비우스 툴리우스 왕은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원로원에 나타났지만, 루키우스는 그를 원로원 건물 밖으로 던져버립니다. 왕은 건물 밖에서 기다리던 루키우스의 무장 병력에 의해 살해당했다. 툴리아는 이를 확실히 마무리하기 위해, 왕의 시신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곳으로 자신의 전차를 몰아 아버지의 몸을 짓밟았습니다. 툴리아의 이러한 행동은 그녀의 남편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를 왕위에 올리는 데 성공했지만, 이로 인해 두 사람은 로마 역사상 가장 비난받는 인물로 남게 되었다. 결국, 이들의 폭정은 로마 왕정의 몰락과 공화정의 시작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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