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기업의 부도는 정부에 부담 초래해
고금리 시대가 지속되면서 뜨거웠던 부동산 시장은 빠르게 식어갔다. 코로나가 세계 시장을 멈추게 만들면서 원자재 공급에 차질이 발생했다. 건설에 필요한 원자잿값이 부족해지자 가격이 급등하였고 공사비가 크게 상승하여 건설사에 부담이 되었다. 건설사는 공사비 증액을 요청하며 공사를 중지했다. 고금리로 불어난 이자와 원금을 상환하지 못하여 부도를 맞이한 건설사도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건설사 순위 11위를 차지하는 태영 건설도 결국 어음을 막지 못하고 부도 위기에 직면하자 정부의 도움을 받기 위해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그러나 태영건설 창업주는 별다른 자구책을 내놓지 않고 배를 째라는 식으로 정부의 지원만 바라고 있다. 이처럼 규모가 큰 기업의 부도로 실직자가 늘어나면 정부에 부담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악질적으로 이용하는 폐단이 발생하고 있다. 과거에도 잘못된 정책이 큰 화를 부른 사례를 살펴보자.
참새 잡기 운동으로 식량 대란을 일으킨 마오쩌둥
중국 공산당은 1949년 정권이 수립된 후 경제 발전에 힘썼으나 인민의 식량난을 해결하는 정책에는 큰 진척이 없었다. 중국 공산당 주석 마오쩌둥은 어느 날 쓰촨성의 한 마을을 순시하다가 벼 이삭을 쪼고 있는 참새를 발견했다. 이때 그는 농민이 참새떼를 없애달라는 진정서를 넣었던 게 생각났다. 그는 참새가 해로운 동물이라 생각하며 타마작운동(打麻雀運動)이라는 참새 섬멸 운동을 펼쳤다. 이후 중국에서 2억 1천 마리의 참새가 죽었다. 애벌레와 메뚜기 등 각종 해충은 천적인 참새가 사라지자,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여러 악재가 겹치며 대흉년이 발생했고, 중국은 5,000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했다. 마오쩌둥의 잘못된 정책 하나가 수많은 목숨을 잃게 했다.
집단화 정책을 펴 식량난을 초래한 스탈린
이오시프 스탈린(Joseph Stalin)은 러시아의 볼셰비키(Bolsheviki) 혁명의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Ilyich Lenin)의 뒤를 이은 소비에트 연방의 지도자이다. 그는 러시아의 낙후된 농업 사업을 근대화하고자 집단화 정책을 시행했다. 이 정책은 개인 소유 농장을 없애고, 농민들을 집단 농장과 국영 농장에 통합시켜 이 농장에서 공동으로 노동하고 수확물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많은 농민이 자신의 땅과 재산을 잃자,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농민들은 땅을 경작하는 동기가 감소했고 생산량도 따라서 급격히 감소했다. 소비에트 연방의 식량 창고 역할을 했던 우크라이나는 집단화 정책에 큰 타격을 받았고 가장 반발이 컸다. 또 가축의 급감으로 농사짓기가 어려워지자, 생산량 저하로 이어졌다. 결국 우크라이나는 대기근을 겪으며 300만 명이 아사했다. 이 잘못된 정책은 훗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앙숙 관계로 변하는 원인이 되었다.
잘못된 정책 하나가 가져오는 폐단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고 나라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또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처럼 나라 사이의 관계를
악화시킬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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