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군 갑옷 때문에 어려움 겪은 거란군
KBS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은 고증을 통해 그 당시 전쟁을 실감 나게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특히 거란군이 고려에 2차 침입 후 큰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퇴각하는 상황을 양규(楊規)와 김숙흥(金叔興)이 귀주에서 맞서 싸우는 명장면으로 그려냈다. 수십 명의 거란군이 포위했지만, 철갑옷을 입은 두 장군을 쉽게 칼로 벨 수 없었다. 북방에서 용맹을 떨치던 유목민족이지만 철갑옷을 입은 군사는 그들에게 곤란한 상대였다. 한국 고대사에 뛰어난 기술로 만들어졌던 갑옷들을 살펴보자.
좋은 갑옷 덕분에 동북아시아를 지배한 개마무사
개마무사(鎧馬武士)는 철로 온몸을 감싼 무사를 일컫는 말로 고대 동북아시아의 맹주였던 고구려의 중장기병을 지칭하기도 한다. 넓은 만주 벌판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고구려는 초원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유목민족과 중국 고대국가의 침략에 늘 대비해야 했다. 뛰어난 기술을 가진 고려군은 작은 직사각형 모양의 철판을 가죽과 연결하여 가볍고 활동하기 좋은 갑옷으로 만들었다. 고구려군은 말에도 철갑을 둘렀고 덕분에 전투에서 중요한 자산인 말을 지켜낼 수 있었다. 개마무사는 고구려 정복왕이라 불리는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이 이끄는 군대의 핵심 전력이었다.
철의 왕국 가야 다양한 갑옷을 만들어
가야는 한반도 남부에 신라와 백제 사이에 존재한 국가이다. 철이 풍부한 지역에 있었던 가야는 철을 재련하여 일본에 수출하며 강력한 연맹 국가로 성장했다. 가야인은 철 다루는 솜씨가 뛰어났고, 철갑옷은 북방에 영향을 받아 몽고발형주(蒙古鉢形胄), 종장판단갑(縱長板短甲), 괘갑(挂甲), 방형판혁철단갑(方形板革綴短甲) 등 다양한 갑옷을 만들어 착용했다. 강력한 철갑기병을 보유한 가야는 한때는 신라 수도 경주를 함락시킬 만큼 위세가 대단한 국가였다. 연맹 국가에서 중앙집권 국가로 발전하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가야인의 뛰어난 기술은 후대에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고대 한반도의 갑주는
뛰어난 철기 문화가 만들어 낸 철갑옷이었다.
철갑옷은 외세의 침략과 정복 전쟁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강력한 방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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