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 완전무결한 성인 아니다"
'마하트마 간디의 불편한 진실'의 저자 'E.M.S. 남부디리파드'는 간디를 완전무결한 성인이라기보다 문제의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통념상 한국에서는 간디를 인도의 민족 해방 운동의 지도자로서 영국의 제국주의를 상대로 인도의 비폭력 불복종 운동을 이끈 인물이라 널리 알려져 있다.
영국군 징집 독려한 간디
간디는 영국에서 법 공부를 마치고 인도로 돌아왔다. 자국의 현실은 비참한 상태였다. 그는 세계 1차 대전이 발발하자 영국 편에 서서 도움을 준다면 인도의 자치정부 수립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1차 세계 대전 당시 “인도의 모든 촌락마다 20명씩 징병해 영국을 도와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 결과 전쟁에 참여한 인도인은 사망자가 9만 명에 이르렀다. 수많은 젊은 인도 청년들이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는데도 간디는 영국으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인도의 독립군 처벌을 원한 간디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화한 것에 반대하던 인도인 '딩그라'가 영국 제국주의자 '커즌 와일' 암살을 시도하려는 일이 발생했다. 간디는 딩그라를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영국에 보냈었다. 간디는 폭력이 폭력을 부른다는 판단하에 비폭력 저항운동을 이끈 지도자였다. 그러나 영국에 대한 테러는 오히려 인도의 독립에 불리한 영향을 준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얼빈에서 안중근 선생이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사건에 대해서도 일본과 한국 양국을 비판했던 논문도 있었다. 간디는 폭력을 전제로 한 독립운동에는 식민지를 지배하는 국가나 지배당하는 국가를 가리지 않았던 듯하다.
가족에게 '이상한 짓' 요구한 간디
인도의 조혼 풍습에 따라 간디는 13살에 결혼했다. 간디는 아내와 잠자리를 즐기다 아버지의 임종을 놓쳤다고 한다. 이후로 죄책감에 시달린 간디는 아내와 잠자리하지 않는 금욕을 맹세했다. 그러나 간디의 행적을 보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적지 않다. 간디는 체온이 떨어졌다며 집안의 조카며느리와 증손녀에게 나체로 자신과 한 이불 덮기를 요구했었다. 가족들에게 이런 불쾌한 요구를 하는 일이 많아 이는 순결 주의로 알려진 간디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이슬람교를 인정한 척한 간디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자 인도와 파키스탄은 종교적 갈등을 겪게 된다. 힌두교를 믿는 인도와 이슬람교를 믿는 파키스탄의 종교적 마찰은 군사적 충돌로 이어졌으며 결국 핵 문제까지 대두되었다. 이런 시기에 간디는 이슬람교를 포용하면서 하나의 인도를 강조하였다. 그러나 간디는 아들이 결혼하려는 여성이 이슬람교도라는 것을 알고 결혼을 강력히 반대하였다. 이 때문에 아들이 이 여성과 결혼하지 못하자 평생 아버지를 비난했다고 한다. 간디는 아버지로서 자식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지 못했고 모순된 행동 때문에 가족들의 신뢰도 잃은 측면이 있었다.
간디와 같은 위대한 인물로 추앙받는 자들의 삶 행적을 살펴보면 모순적인 부분이 많다.
그러나 왜 모순된 행보를 보였는지에 대한 시대적 상황,
배경 등을 함께 짚어봐야 그 인물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해질 것이다.
역사적 인물에 관심이 있다면 청랑이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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