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된 유물 법적판단으로 일본에 반환되다
고려 시대에 제작되어 충남 서산 부석사에 봉안되었던 금동 관세음보살 좌상이 일본 대마도로 반환되었습니다. 이 불상은 약 600여 년 전 왜구에 의해 약탈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일본 대마도의 관음사에 소장되어 있었습니다. 2012년 국내 도굴범에 의해 일본에서 불법 반입된 뒤 소유권을 둘러싸고 부석사와 한국 정부 간 소송이 진행되었고, 결국 2023년 대법원은 일본 측 소유권을 인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2024년 6월, 불상은 봉송 법회를 마친 후 관음사로 이송되었으며, 대마도 박물관에서의 전시가 검토 중입니다. 이번 사례는 문화재 반환 문제를 둘러싼 역사적 정의, 법적 판단, 종교적 감정이 복잡하게 얽힌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됩니다.
벨기에, 프랑스로부터 귀중한 유물을 빼앗기다
1794년 프랑스 혁명군이 벨기에를 점령하면서, 브뤼셀에 있던 부르고뉴 공작 도서관 등에서 수천 권에 이르는 필사본과 고서가 약탈당했습니다. 이들 문화재는 파리로 이송되어 루브르 박물관과 프랑스 국립도서관 등에 소장되었으며, 중세 유럽 최대 규모의 필사본 컬렉션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알 수 있듯 프랑스는 단순한 군사 점령을 넘어, 유럽의 문화유산을 조직적으로 자국에 집중시켜 제국의 문화적 위상을 세우려 했습니다. 이로 인해 벨기에는 가장 귀중한 문화적 자산들을 잃게 되었고, 이는 이후 오랫동안 프랑스와의 문화 외교에서 핵심 쟁점이 되었습니다.
벨기에, 프랑스에 유물 반환을 지속적으로 촉구하다
1815년 나폴레옹이 패배하고 빈 회의가 열리면서, 벨기에는 연합국과 함께 프랑스에 약탈 문화재 반환을 강하게 요구했습니다. 이에 프랑스는 일부 미술품과 필사본을 돌려주었고, 이 반환은 전쟁 중 약탈 문화재가 외교 협상으로 환수된 최초 사례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반환된 필사본은 오늘날 브뤼셀 왕립 도서관(KBR)에 소장되어 있으며, 여전히 일부는 프랑스에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벨기에는 19세기 말까지도 지속적으로 반환을 요구했고, 이는 이후 국제사회에서 문화재 반환 원칙을 세우는 데 중요한 선례로 작용했습니다. 오늘날 이 사례는 외교적 협상을 통한 문화 정의 실현의 첫걸음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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