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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교황 레오 14세 선출, 가톨릭 교황 제도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by JWS 2025.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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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교황이 탄생하다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이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되어 레오 14세라는 즉위명을 택했습니다. 그는 미국 출신으로는 최초의 교황이며, 교황청 주교부 장관을 지낸 인물입니다. 콘클라베 둘째 날, 133명의 선거인단 중 3분의 2 이상이 그를 지지해 네 번째 투표에서 교황에 선출되었습니다. 그는 첫 공식 발언에서 “평화”를 강조하며 부활한 그리스도의 첫인사로 대중에게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선출 직후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는 흰 연기가 피어올랐고, 성 베드로 광장은 환호와 눈물, 감격으로 가득 찼습니다. 갈매기 두 마리가 굴뚝 곁에 머무르며 상징적인 장면도 연출됐습니다. 교황의 시작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아봅시다.

새 교황으로 선출된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 출처:바티칸/로이터 연합


로마의 마지막 불꽃, 콘스탄티누스 대제

서기 4세기, 로마 제국은 내외의 위기 속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끊이지 않는 황제 교체, 국경 지역의 침입자들, 경제의 불안정은 제국의 미래를 위협했습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바로 콘스탄티누스 대제였습니다. 그는 단순한 군사적 승리나 정치적 안정이 아닌, 제국의 근간을 다시 묶어 줄 정신적 구심점을 찾고자 했습니다. 그 해답을 그는 ‘기독교’에서 찾았습니다. 313년, 콘스탄티누스는 동방의 황제 리키니우스와 함께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며 기독교를 공식적으로 공인했습니다.

이는 박해의 시대를 끝내는 조치였을 뿐 아니라, 로마 황제가 하나의 종교를 제국의 질서로 받아들인 결정적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이후 대형 교회를 짓고, 기독교 지도자들과 공의회를 주재하며 새로운 질서를 이끌었습니다. 정치와 종교, 제국과 신앙의 길이 하나로 엮이는 전환의 서막이었습니다.

밀라노칙령을 내리는 콘스탄티누스 대제


밀라노 칙령은 교황제도 씨앗이 되다

콘스탄티누스는 단순히 종교를 인정한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독교를 통해 분열된 로마 사회를 통합하고자 했습니다. 기독교는 이미 하층민부터 귀족까지 폭넓게 퍼져 있었으며, 도덕성과 공동체 의식, 질서 있는 제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황제는 이 점을 활용하여 무너지는 로마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려 했던 것입니다. 밀라노 칙령은 기독교의 신앙을 보장할 뿐 아니라, 몰수되었던 교회 재산을 반환하고 교회 지도자들의 권위를 보호하는 등 실제적 이익을 보장했습니다.

이후 콘스탄티누스는 니케아 공의회를 소집하여 교리를 통합하고, 교회가 제국의 질서를 지탱하는 한 축이 되도록 설계했습니다. 이로써 교황 제도의 씨앗도 함께 뿌려졌습니다. 그의 선택은 제국의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었고, 비록 로마 제국은 이후 쇠락했지만 기독교는 오히려 더 강한 영향력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교황의 권위와 바티칸의 영향력은, 이 한 황제의 시대적 결단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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