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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솔로 26기 영철, 서예로 돈 버는 시대 - 과거 서예로 유명했던 인물은?

by JWS 2025.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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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체로 돈버는 시대

‘나는 솔로’ 26기에 출연한 영철은 서예 전공자이자 캘리그라퍼로 활동 중인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키 193cm의 장신인 그는 처음엔 운동선수로 오해받기도 했지만, 붓글씨 공연과 패션위크 콜라보 등 예술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프리랜서로 일하며 홍대 인근에 작업실을 두고 있으며, 하루 3시간 일하면서도 평균 이상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감성적인 면모도 드러내며, 드라마를 보고 눈물 흘릴 만큼 이성적이고 섬세한 성격이라고 자신을 표현했습니다. 뛰어난 글씨체로 이름을 날렸던 인물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출처 : 뉴시스]


왕희지, 정치보다 글씨체로 이름을 알리다

왕희지는 동진 시대의 귀족이자 관료였으나, 그의 진정한 이름은 정치가가 아니라 예술가로 남았습니다. 명문가 출신으로 여러 관직을 지냈고, 회계 내사와 궁정 도서관 보좌관 등 조용한 자리에서 봉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권력의 중심보다는 예술과 사색의 자유를 중시하며, 관료로서의 겉모습보다 내면의 고요함을 지향했습니다. 그의 글씨는 단순한 필치가 아니라, 인격과 감정, 내면세계가 응축된 예술이었습니다.

대표작인 『란정서』는 난정이라는 정자에서 열린 시회 중 탄생한 작품으로, 삶의 덧없음과 인간관계의 깊이를 우아하고 절제된 필체로 담아냈습니다. 당대의 사람들은 그의 글씨를 보고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고, 실제로도 그의 붓끝에는 사상과 인격이 함께 흘러내렸습니다. 글씨가 곧 사람의 거울이라는 말은 그로부터 비롯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좌)왕희지 (우) 그가남긴 필체


그가 후대에 남긴 것은?

왕희지가 남긴 것은 단순히 몇 점의 서예작품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서성(書聖)'이라는 칭호 아래 수천 년 동안 동아시아 예술가들의 길잡이가 되었고, 서예란 예술을 통해 정신을 수양하고 인격을 완성하는 문화 전통을 확립했습니다. 진품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수많은 모본과 전각을 통해 그의 영향력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는 또한 예술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삶으로 보여준 인물이었습니다. 정치와 권력에 매몰되지 않고, 스스로를 비워 예술에 몰입한 태도는 수많은 시대를 건너 예술가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왕희지의 서예는 단지 아름다움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삶의 태도와 인간의 고뇌, 자유로운 정신의 표출이었습니다. 결국 그가 후대에 남긴 가장 큰 유산은, '글씨는 마음을 담는 그릇'이라는 철학 그 자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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