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선 비호감도 1위에 오른 이준석 대표
6·3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주요 후보 호감도 조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48%로 가장 높은 호감도를 기록했습니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35%,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28%로 나타났으며, 특히 이 후보는 김 후보보다도 낮은 수치를 보였습니다. 김 후보는 전 연령층에서 비호감도가 높았으며, TK·PK 지역에서도 지지세가 팽팽하게 나타났고, 중도층에서는 비호감도가 75%에 달했습니다. 이준석 후보는 20대에서 상대적으로 호감도가 높았지만 전체적으로는 비호감도가 67%로 가장 높게 조사됐습니다. 이준석 후보는 당선 가능성이 1%로 나오면서도 다윗과 골리앗 싸움이라 표현하며, 과거 노무현 대통령을 꿈꾼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지율이 몇%에서 시작해 당선되었을까요?
민주당 경선 시작 1% 지지율 후보 노무현
2002년 3월, 민주당 경선이 시작될 당시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은 단 1~2%에 불과했습니다. 당내에서는 이인제 후보가 독주하고 있었고, 노무현은 군소 후보 취급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지역주의 타파’와 ‘개혁’이라는 기치를 내걸며, 광주 경선에서 승리한 것을 계기로 이른바 ‘노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3월 13일, 이회창과의 양자 대결에서 처음으로 역전한 여론조사가 공개되며 흐름은 완전히 바뀌었고, 경선 종료 시점에는 무려 60%에 육박하는 지지를 얻어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확정됐습니다.
막강한 이회창 후보를 상대로 역전하여 대통령이 되다
본선에서도 상황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이회창 후보는 안정적인 보수 지지층을 바탕으로 선두를 유지했고, 정몽준 후보가 제3지대에서 급부상하면서 야권 분열이 우려되었습니다. 하지만 노무현은 정몽준과의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승리하며 야권 단일 후보로 확정됐고, 이후 여론조사에서 이회창을 앞서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2002년 12월 19일 대선에서 48.9%의 득표율로 이회창 후보를 2.3%p 차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1%의 지지율에서 시작한 후보가 국민의 선택을 받아 역전을 이루기까지, 그 여정은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극적인 반전의 한 페이지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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