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성장의 기반이 된 한국의 대표 공업도시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은 모든 국민이 하나가 되어 새마을 운동을 싣작으로 경제 성장을 시작했다. 현대는 국가의 적극적 지원아래 울산을 자동차, 조선, 화학의 대표적 생산 기지로 키워냈다. 울산은 한국의 대표적인 공업도시이다. 지금도 울산은 한국 경제 시장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단순히 울산이 한국의 대표 공업도시가 된 것은 아니다. 과거 약소국이었던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킬 수 있도록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준 도시가 바로 울산이었다. 울산이 무역항으로 과거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펴보자.
신라의 국제 무역항 역할을 했던 울산항
울산은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 신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에도 울산은 문명의 꽃을 피웠다. 훗날 신라는 울산을 통합하면서 고대 국가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경주와 가까운 거리에 있던 울산은 신라의 국제 무역항 역할을 했다. 신라는 울산항을 통해 국가 성장의 발판을 만들었다. 아라비아반도에 신라와 거래했던 기록이 남아 있는데 국제항으로써 울산항의 면모를 알 수 있다. 울산항을 통해 신라는 세계의 문물을 받아들였고 고구려, 백제를 멸망시킨 후에 더욱 번성하였다. 그러나 신라 말기 국력이 약해지며 잦은 왜적의 침입으로 울산항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동해안 최고의 소금 생산기지
울산은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동해안 최고의 제염지대였다. 울산의 소금 생산에 대한 구체적 기록은 조선시대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나온다. 기록에 의하면 울산은 동해안의 제염 생산 기지로 국가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경상도에 제염을 관리하는 관청을 세 군데 두었다고 하는데 동해안 지대에 접한 울산이 그중 하나였다. 울산은 소금 생산기지의 역할을 하면서 소금 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그래서 일본은 일제 강점기에 군대에 보급하기 위한 소금을 생산하고 수출하는 기지로 울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한국의 대표적인 공업 도시 울산은
고대 신라의 무역항으로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조선시대에 울산은 제염 생산 기지로 동해안 일대에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일제 강점기에 소금 생산 기지로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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