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발전과 함께하는 도로의 역사
도로의 역사는 인류 문명의 발전과 함께 시작되었다. 4대 문명(메소포타미아, 인더스, 이집트, 황하)의 발상지는 비옥한 토지와 강을 끼고 있어 많은 곡물을 수확할 수 있었다. 고대 인류는 먹는 게 가장 시급한 문제였고, 비옥한 토지에서 나오는 풍족한 작물은 굶주림을 해결해 주면서 많은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다. 문명이 꽃을 피우고 지배계급이 생겨났으며 비옥한 땅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했다. 정복한 영토에서 생산된 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도로가 만들어졌고 말이나 소를 이용해서 운반했다. 도로가 잘 정비된 국가는 눈부신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잘 정비된 도로는 전쟁 시 적군의 수도를 공략하기 쉬운 지름길이 되기도 했다.
로마보다 도로 정비가 앞섰던 페르시아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다. 천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로마는 과거 서양의 중심지였다. 지중해 해상권을 장악하면서 동서양의 영토까지 확장했던 로마. 그들은 잘 정비된 도로를 통해 각 식민지에서 생산된 물자를 로마로 이송했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한다는 말도 여기서 나왔는데 실상은 페르시아가 원조였다. 그리스를 지배했던 페르시아는 각국의 도시가 긴밀하게 연결되도록 도로를 정비했다. 페르시아의 도로 정비는 그리스보다 문화가 진일보하는 계기가 되었다. 찬란한 문화를 뽐내던 페르시아도 한 때는 식민지였던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더(Alexandros the Great)에게 빠르게 정복당하고 말았다. 군사적 우위에 있었던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 3세(Darius III)는 알렉산더 대왕과의 첫 전투에서 패배 후 후방으로 도망쳤으나 페르시아가 잘 정비한 도로를 따라 발 빠르게 추격한 알렉산더는 끝내 페르시아를 멸망시킬 수 있었다. 알렉산더 대왕은 식민지국에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라는 식민지 도시를 건설하여 각 도시들을 연결하는 도로를 정비했다. 알렉산더의 죽음으로 내분이 일어나 도로 정비 사업은 멈추고 영토는 분할되었다. 이후 로마가 활발한 정복 전쟁으로 알렉산더 대왕보다 더 큰 영토를 소유하게 되었다. 로마는 광활한 영토에서 오는 물자를 받기 위해 도시마다 연결된 도로를 로마와 연결하게 되었다. 달이 차면 기울듯이 로마도 망국의 길을 걷자, 로마가 잘 정비해 놓은 길을 따라 북방의 게르만족이 침입하며 결국 로마는 망하게 되었다.
스페인에 정복당한 잉카 제국
로마가 만든 도로는 지금도 차가 달린다고 해서 문제가 없을 정도로 견고하게 만들어졌다. 로마의 도로에 비견되는 것이 잉카제국의 도로이다. 잉카 제국의 도로 또한 현재 차가 다녀도 문제가 없을 만큼 튼튼하게 만들어졌다. 잉카 제국은 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제국이었다. 잘 정비된 도로는 잉카가 아메리카에서 다른 제국들보다 고도의 성장을 이끌어 주는 촉매제가 되었다. 콜럼버스(Columbus)의 신대륙 발견 이후 스페인의 정복자이자 탐험가인 피사로(Francisco Pizarro)는 얼마 되지 않는 군대로 잉카 제국의 황제를 생포할 수 있었다. 잘 정비된 도로는 스페인의 대포를 운반하기에 용이했고 백인이 옮긴 전염병은 도로를 타고 빠르게 잉카 제국에 퍼져나가게 되었다. 찬란한 문명을 가진 잉카 제국이 스페인 군에게 정복되는 데는 도로가 한몫했다.
도로는 국가의 성장에 촉매제 역할을 하지만
전쟁이 나면 적군이 빠르게 진격하는 지름길이 된다.
과거 페르시아와 로마, 잉카 제국의 도로에 얽힌 역사에서 양면성을 확인할 수 있다.
도로는 국가의 혈관 같은 존재지만
혈관을 타고 바이러스가 침투하듯이 적에게는 유리한 길이 될 수 있다.
역사에 얽힌 재밌는 일화를 청랑이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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