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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랑 인재 식견

비전공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by JadeWolveS 2023.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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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수 회사로 중국 최대 부호가 된 언론인 출신 사업가

'중국의 포브스'로 불리는 후룬바이푸는 매해 중국 기업인 재산 순위를 조사한다. 후룬바이푸에서 생수 회사인 농푸스프링 중산산 회장이 4,500억 위안(83조 200억) 재산을 가진 중국 최대 부호라고 알렸다. 중산산 회장은 어렵게 대학에 입학한 뒤 국영 언론사인 절강일보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85년 퇴사, 사업을 시작했으나 초기 사업 성과는 좋지 않았다. 하지만 각종 영양제를 팔아서 사업에 성공한다. 이때 확보한 자금과 경험은 1996년 농푸스프링을 세우는 기초가 되었다. 언론인으로서 경험을 통해 중산산 회장은 마케팅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리하여 다른 생수 업체와는 차별화된 전략으로 천연수와 건강한 물을 강조하며 현재의 농푸스프링을 키울 수 있었다. 중산산 회장처럼 비전공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둔 인물들을 살펴보자.

 

고려 초기 문관 출신 서희 장군 강동 6주를 개척 출처:네이버이미지

싸우지 않고 승리한 문관 출신 서희 장군

서희(徐熙)는 고려 초기 문관 출신으로 거란과 싸우지 않고 강동 6주를 받아내며 유명해졌다. 그 당시 거란은 만주 지역에 흩어져 살다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가 부족을 통합하며 중국 양쯔강 이북과 발해를 점령하여 동북아시아 최강대국인 요를 세웠다. 송나라를 점령하고 싶었던 요는 송을 공격하다 고려가 배후를 치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힘이 약한 고려를 먼저 정복하기로 했다. 고려 조정은 거대한 대국 요를 상대로 싸울지 화친할지 의견이 나뉘고 있었다.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하자 서희가 나서서 거란을 설득하겠다며 나섰다. 거란군 총대장 소손녕(蕭遜寧)은 고구려 지역을 거란이 통치하고 있기에 고려가 취한 고구려 영토를 내놓으라는 억지를 썼다. 서희는 고려는 고구려의 정신을 계승한 국가니, 거란이 오히려 무력으로 통치하는 땅을 내놓으라고 당당하게 맞섰다. 서희는 당시 요나라가 주력군을 고려로 보낸 사실을 송나라가 알고 변방을 위협하고 있어 거란군이 고려에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거란군도 철수할 마땅한 변명거리가 필요했고 서희는 이를 놓치지 않고 제안했다. 요와 고려 사이에 있는 여진 때문에 화친을 맺기 어려웠으니, 여진을 고려가 정벌하고 압록강까지 개척하겠다는 확답을 받았다. 거란군이 철수하자 서희는 고려군을 진군시켜 강동 6주 일대에 있는 여진족을 평정하고 성을 쌓았다. 훗날 서희가 개척한 강동 6주는 거란군의 침략에 대비하는 큰 방패가 되었다.

 

(좌) 강감찬 장군 흉상 (우) 거란의 침략 루트

귀주대첩의 주인공 문관 출신 강감찬 장군

강감찬(姜邯贊) 장군은 거란군을 귀주에서 물리치며 고려의 위대한 장군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단 한 번도 전장에서 장수로 살아본 적이 없던 문관 출신이었다. 거란군의 2차 침략으로 흥화진에서 크게 패해 물러난 뒤 거란은 서희 장군 시절 개척한 강동 6주를 돌려 달라며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3차 침략을 했다. 2차 침략으로 개경의 궁궐이 불타며 나라가 큰 피해를 당한 상태에서 또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것은 국가의 존속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이때 서북면 행영 도통사(西北面行營都統使)로 있던 강감찬은 주변 군인과 백성 20만 명을 모아 귀주에서 뛰어난 전략으로 10만 넘는 거란군을 몰살시켰다. 이 전쟁으로 거란군은 주력부대를 모두 잃고 나라가 위축되어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에 멸망당했다. 칼 한 번 들어보지 않았던 문관 출신 강감찬이 동북아시아 최강인 거란군을 몰살시킬 수 있었던 것은 무장의 능력이 아닌 상황 판단 능력과 전략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혜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현대에도 비전공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두는 인물이 종종 있다.
서희, 강감찬 문관 출신 장군처럼
전문 분야가 아닌 곳에서 큰 성공을 거둔 비결은
자기 전공 분야를 비전공 분야에 잘 접목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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