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위대한 업적을 바탕으로 쓰여
고대 역사는 모든 기록을 담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시대상 큰 사건이나 핵심 인물을 바탕으로 서술하는 것을 기본으로 했다. 우리가 현재 배우는 역사도 인물이나 사건을 중심으로 나열하여 배운다. 그러다 보니 큰 업적이 상대적으로 작은 업적을 가리는 경우가 더러 있다. 위대한 조상 때문에 훌륭했지만 이름이 가려졌던 인물들에 대해서 알아보자.
고구려 최전성기를 구가한 문자왕
고구려는 한국 고대 국가 중 하나이며 고조선, 발해 다음으로 광활한 북방 영토를 가지고 있었던 국가이다. 고구려는 현재의 압록강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외적의 침략에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기도 하였으나 정복왕이라 불리는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과 그의 아들 장수왕(長壽王)에 이르러 최고 전성기를 누렸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다. 장수왕이 고구려 최대 영토를 통치한 왕이라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문자왕(文咨王)이다. 문자왕은 장수왕의 손자로 선대 조상이 정복한 영토를 잘 통치하였다. 또 고구려 북쪽에 있는 부여를 복속시키고 남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고구려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선대 조상의 뛰어난 업적에 비하면 눈에 띄는 기록이 없어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청나라 전성기의 토대를 만든 옹정제
강희제(康熙帝)는 청나라 4대 황제이다. 청나라는 중국 한족이 세운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여진족이 세운 나라이다. 여진족이 한족을 지배하면서 건국 초기에 통치가 불안하여 내란이 발생했다. 어린 나이에 황제가 된 강희제는 삼번의 난(三藩之亂)을 진압하고 청나라의 기반을 닦는다. 강희제는 뛰어난 왕제를 찾다 손자 건륭제(乾隆帝)가 제격이라 생각했다. 건륭제 때 청나라는 전성기를 맞아 그 당시 최강대국으로 성장하였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낀 옹정제(雍正帝)는 두 사람의 업적에 비해 자신이 남긴 업적 크지 않았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옹정제는 아버지 강희제가 시작한 일들을 잘 마무리했고 왕권을 강화하여 아들 건륭제가 수월하게 정치를 할 수 있도록 체제를 정비했다. 역사에 옹정제가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옹정제가 없었다면 청나라는 강희제부터 건륭제까지 강건성세(康乾盛世)라 불리는 전성기를 누를 수 없었을 것이다.
중국의 성군이라 불리는 당태종 이세민은
건업보다 어려운 것이 수성이라 했다.
나라를 잘 관리하고 통치했던 왕들은 눈에 띄는 성과가 없었지만
그들이 있었기에 선대나 후대에 업적이 더 빛날 수 있었다.
강희제와 관련된 글을 청랑이 추천합니다. |
'청랑 인재 식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직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방법은? (7) | 2024.01.01 |
---|---|
비전공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6) | 2023.11.21 |
왜 욕심을 경계하라고 할까? (14) | 2023.11.03 |
역사 속 위대한 여장부는 누구일까? (10) | 2023.10.31 |
왜 능력을 갖춘 사람이 후계자가 되어야 하는가? (9) | 2023.09.1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