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 청혼한 정치인
전남 한 시의회 의원이 공식 석상인 본회의장에서 시정질문을 마친 뒤 같은 시청에 근무하는 여성 공무원에게 공개 청혼을 했다. 해당 여성 공무원은 본회의 상황을 내부 TV로 시청하다 자신이 이름이 들리자 깜짝 놀랐고, 이후 시의원이 꽃다발을 들고 나타나 프러포즈하자 승낙했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결혼하기 위해 공개석상에서 멋지게 사랑 고백을 한 조선왕도 있었다. 사랑에 직진이었던 조선 왕들을 알아보자.
사랑에 진심인 태조 이성계
태조 이성계(太祖 李成桂)는 조선을 개국한 왕이다. 그는 고려 말 원나라, 여진족, 왜적의 침략을 격퇴하며 젊은 나이에 백성의 지지를 받고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전장을 호령하는 영웅의 모습과 달리 이성계는 사랑에 진심이었다. 그는 살아생전 6명의 부인을 두었으나 첫 번째 부인 신의왕후 한 씨(神懿王后 韓氏)에 대한 사랑은 애틋했다. 당시 잘 나간다는 고려 남자라면 부인 외에 첩을 끼고 사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성계는 18살 나이에 부인 한 씨와 결혼하여 20년 동안 한눈팔지 않았고 부부 사이도 좋아 6남 2녀를 낳았다. 이후 이성계는 세력을 키워 고려 중앙 정계에 진출하며 정략결혼을 하게 된다. 그는 새로운 부인이 생길 때마다 마음이 꽂히면 진심으로 사랑하는 직진남이었다.
15년 기다림 끝에 사랑을 쟁취한 정조 이산
정조(正祖)는 영조(英祖)에 이어 조선 후기 르네상스를 연 조선의 위대한 왕이다. 정조 이산(李祘)은 어릴 적부터 마음에 두고 있는 소녀가 있었다. 그 소녀는 성윤우(成胤祐)의 딸 덕임(德任)이었다. 그는 세손인 시절 11살의 나이로 세손빈과 혼인했다. 세손이 된 그는 후궁을 들일 수 있게 되었다. 정조는 오랫동안 마음에 둔 덕임을 후궁으로 맞이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덕임은 후궁이 되는 것을 망설였다. 이유는 세손빈이 아직 자식이 없고 14살로 덕임과 나이가 같다는 이유였다. 10년 뒤 영조 사후 정조가 왕이 되었으나 부부 사이가 애틋하지 않아 자식이 생기지 않았다. 왕은 후사가 없으면 공식적으로 후궁을 3명을 들일 수 있었고 정조는 덕임을 후궁으로 들이고자 했다. 그러나 덕임은 아직 왕후에게 자식이 없어 후궁이 될 수 없다 거절했다. 그렇게 정조는 2명의 후궁을 들였으나 덕임을 후궁으로 들이고자 했고 마침내 덕임을 설득하여 15년 만에 후궁으로 들일 수 있었다. 정조는 어린 시절부터 마음에 둔 덕임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하여 왕이라는 권력을 이용해 결혼을 강요하지 않고 15년을 기다리는 순정파 직진남이었다.
시대를 불문하고 한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의 진심은
영화나 드라마 소재로 쓰일만한 장면을 연출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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