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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랑 교육 식견

교육 시장에 공정성이 필요한 이유는?

by JadeWolveS 2023.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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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갑작스러운 수능 정책 발표

정부는 수능을 5개월 남겨두고 갑작스러운 발표를 했다. 수능의 킬러 문항(고난도 문제)을 없애겠다고 말한 것이다. 사교육시장과 학부모 및 학생들은 정부의 갑작스러운 정책 발표에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킬러 문항은 그동안 고교수준에서는 쉽게 풀 수 없어 논란이 많았으나 변별력을 줄 수 있어 수능에 공신력을 주는 문제라고 여겨왔다. 수시에 의해 입시 불공정이 터져 나오면서 수능으로 대학교에 가는 것이 오히려 공정하다고 생각했다. 한편 고난도 문제도 사교육을 받지 않으면 맞출 수 없는 시대가 되면서 사교육 시장과 교육 시장이 하나의 거대한 카르텔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처럼 국가의 중대사인 교육의 병폐를 없애려 노력했던 역사 속 사례를 살펴보자.

 

고려 덕종 무덤 출처:뉴시스

과거제 카르텔 깨려 한 고려 덕종

고려 4대 왕 광종(光宗)은 최초로 과거제를 도입한 왕이다. 호족들의 힘을 누르고 뛰어난 관리를 뽑아 왕권 강화에 힘썼고 고려는 과거제가 자리 잡아 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려 귀족들은 과거 시험에 혜택이 있었다. 1차 시험을 통과하고 2차 시험을 바로 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고려 9대 왕 덕종(德宗)은 이러한 귀족의 혜택을 막으려고 국자감시(國子監試)를 만들었고 비로소 고려의 과거 제도가 완성되었다. 고려 과거제는 세 차례 시험을 쳐야 관리다운 관리라 부를 수 있었다. 고려 초 문벌 귀족은 과거 시험에 떨어지는 것을 가문의 수치라 여겼다. 그리하여 덕종이 바꾼 과거 제도 시스템 때문에 준비를 철저히 해야만 했다. 고려의 과거제는 조선으로 넘어와서도 유지되었고 구한말까지 이어졌다. 덕종은 귀족의 과거제 혜택을 없애고 뛰어난 인재를 뽑아 왕권을 강화하여 강한 고려를 만들고자 했다.

 

서얼금고법을 없애려 한 영조와 정조

서얼의 '서'는 양인(良人) 첩의 자손, '얼'은 천인(賤人) 첩의 자손을 말한다. 고려 시대까지만 해도 서얼에 대한 차별은 심하지 않았으나 조선 태종 때 사족들은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자 순수 양반 혈통이 아닌 서얼은 차별하였으며 서얼금고법(庶孼禁錮法)이 실행되어 관직에 나가는 것이 어려웠다. 무수리인 어머니와 숙종 사이에서 태어난 영조는 서얼 출신으로 그들의 삶에 공감하고 있었다. 그는 서얼 출신을 위한 직책을 신설하였고, 영조의 손자 정조는 규장각(奎章閣)을 세워 서얼을 적극적으로 채용하여 조선시대의 르네상스를 열었다. 양인까지 시험을 칠 수 있었다고는 하였으나 실상은 양반만 칠 수 있는 시험이었고 서얼 출신은 신분 때문에 관직에 나가는 데 한계가 있었다. 서얼금고법은 조선 후대까지도 이어지고 있었으나 훌륭한 임금의 직권으로 서얼이 과거 시험을 칠 수 있도록 일시적으로 허용하면서 과거 제도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교육은 백년대계(百年大計)라는 말이 있다.
고려 덕종은 국자감시를 설치하여 과거제를 개선하려 했고
영조와 정조는 서얼도 관직에 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
양반만의 소유물인 과거제에 변화를 줬다.
국가의 성장에 있어 근본이 되는 교육 시장에 공정성이 사라지고
돈과 부모의 배경으로 입시가 결정되는 것은 국가의 미래에도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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