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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랑 교육 식견

왜 외국어는 필수라고 하는 걸까?

by JadeWolveS 2023.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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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발전으로 외국어 중요성 올라가

세계는 기술의 발전으로 과거와 달리 하루 안에 지구 반대편까지 갈 수 있게 되었다. 또 통신 기술의 발전은 어느 곳에 있든 서로가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게 만들며 거리의 한계를 넘어섰다. 이처럼 다른 나라의 사람들과도 소통이 가능해지면서 외국어 공부는 필수가 되고 있다. 또 고등학교 입시에서도 미래 직업군을 위해서 외고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편이다. 과거 조선 시대 역관은 지위가 낮았으나 외국과의 거래에서 이문을 남기는 이점이 작용했다. 과거 외국어의 중요성을 알았던 사람들에 대해서 살펴보자.

 

충무공 이순신 5대조 이변 묘 출처:네이버이미지

 

한어 일인자 되어 출세한 이변

이변(李邊)은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5대조 조상이다. 이변은 30살에 문과에 합격하여 승문원(承文院)에 들어가 한어 즉 중국어를 배웠다. 이변은 주경야독(晝耕夜讀)하며 조선에서 한어의 일인자가 되어 통역관을 교육하는 사역원(司譯院)에 들어갔다. 그 뒤 그는 명나라에 사신으로 자주 파견되었으며 세종부터 50년 동안 6명의 임금을 섬기며 조선에서 가장 오랜 외교관 생활을 하였다. 이변은 외교관으로서 그의 능력을 인정받아 형조판서(현재의 법무부 장관)까지 올랐다. 문과에서는 역관의 영역이라 생각하며 하찮게 여겼던 외국어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기에 그는 평범한 관리로 머물 수도 있는 관직 생활에서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

 

미군에게 영어 배워 UN사무총장 된 반기문

반기문은 가난한 시절에 충주에서 태어났다. 당시 충주는 미국의 원조를 받은 비료 공장이 있었고 미군들이 거주할 수 있도록 사택을 만들어 주었다. 배우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반기문은 미국인들을 찾아가 영어 배우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후 그는 갈고닦은 영어 실력을 뽐내며 고3 때 적십자가 후원하는 에세이 대회에서 대한민국 대표로 미국을 방문하게 된다. 반기문은 외교관이 되겠다는 결심을 품고 열심히 학업에 전념하여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이후 반기문은 승승장구하며 외교부 장관으로 제 몫을 해내면서 한국인 최초로 UN사무총장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한국에서 가난하여 영어도 배우기 어려웠던 시절 미군에게 배운 영어를 발판 삼아 '세계의 대통령'이라 불리는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

 

 

외국어 공부를 중요시하지 않았던 조선에서
이변은 한어(중국어)를 부단히 공부하여
훌륭한 외교관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반기문은 어린 시절 미국인들에게 배운 영어를 발판 삼아
외교관부터 시작하여 UN 사무총장까지 올랐다.
이처럼 외국어는 살아가는 데 있어서 새로운 길을 제시하거나
또 다른 기회를 주는 하나의 무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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