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우울증 환자 늘어
최근 5년 사이에 20대 우울증 환자가 두 배로 폭증하는 이례적인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 원인으로 극심한 취업난과 부의 양극화, 과도한 스트레스를 꼽고 있다. 또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시장으로 빠르게 전환되면서 사회활동이 줄었고 그래서 인간관계가 줄어든 것도 하나의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청년들이 미래를 생각하면 막막하다 보니 자신의 처지에 한탄하며 우울증에 걸리는 게 아닌가 한다. 과거 자신에게 주어진 녹록지 않은 환경을 불굴의 의지로 이겨내 성공했던 인물을 살펴보며 힘든 지금의 처지를 다독여 보자.
조선 국법에 도전한 기생 김만덕
김만덕(金萬德)은 어릴 적 부모를 잃고 고아로 자라 친척 집에 몸을 의탁하다 기녀 집에 생계를 이어 나갔다. 성인이 된 이후 기녀가 천시받는 것을 알고 제주목사에게 탄원하여 양인 신분으로 환원되었다. 그녀는 신분을 회복하고 장사를 시작하여 큰돈을 벌게 되었다. 정조 12년 제주도는 큰 흉년이 들어 나라에 구휼미(救恤米)를 신청하였고, 육지에서 쌀을 실어 오던 배가 풍랑을 만나 가라앉고 만다. 조선 조정이 제주도에 쌀을 보낼 여력이 부족할 때 김만덕은 전 재산을 털어 육지에서 쌀 500석을 사 와 50석은 친척에게 나눠주고 450석은 제주도민에게 나눠주었다.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지자, 정조는 김만덕을 칭송하며 그녀의 두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 하나는 제주도를 떠나 한양에 가서 임금을 뵙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금강산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당시 제주 백성은 제주도를 떠나는 것이 국법으로 금지되어 있었는데 김만덕은 국법에 정면으로 도전하였다. 기생 출신에 내륙인에게 차별받는 제주도민이었던 그녀는 여자의 몸으로 제주도민 중에서 감히 그 누구도 해낼 수 없었던 일들을 해냈던 위대한 여인이었다. 김만덕에게 주어진 열악한 환경은 오히려 그녀를 위대한 인물로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
노예에서 제후가 된 흉노 태자 김일제
김일제(金日磾)는 흉노족의 태자였다. 한나라와 흉노는 서로 일진일퇴(一進一退)를 거듭하는 전쟁 중 그는 한나라 명장 곽거병(霍去病)에게 볼모로 잡혀와 태자신분에서 하루아침에 황제의 목장에서 일하는 노예가 되었다. 어느 날 한무제는 대소신료를 불러 연회를 베풀고 있었다. 그는 연회 도중 마병 부대 사열을 명령하였다. 말을 끌고 오던 노예들 대부분은 연회에서 춤을 추는 가녀린 무녀들이 보이자, 눈을 힐끔거렸다. 그러나 한 노예는 무녀에게 관심도 없다는 듯이 곁눈질 한 번 없이 말을 끌고 가고 있었다. 한무제는 이 노예를 유심히 살피어 이름을 물었고 그가 흉노족 태자 김일제라는 사실을 알았다. 한무제는 흔들림 없이 자기 일에 소임을 다하는 모습을 높이 평가하여 그를 노예에서 면천해 주고 황제의 말을 관리하는 마감(馬監)이라는 직급을 주었다. 김일제는 한무제가 보여준 신임에 감사하며 충성을 맹세하였다. 뒷날 한무제를 암살하려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김일제가 미리 알아차려 막을 수 있었다. 적국에 볼모로 잡혀 평생을 노예로 살았어야 할 김일제는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여 한무제의 눈에 들었고 변치 않는 충성심으로 제후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김만덕과 김일제는 어려운 환경을 이겨낸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의 사례는 상황을 바꿀 수 없고 미래가 어둡다는 현시대의 젊은 세대에게
포기하지 말고 도전하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젊은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또 다른 글을 청랑이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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