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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랑 이슈 식견

잃어버린 한국 영토는 어디?

by JadeWolveS 2023.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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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 모두 영토 분쟁국인 한국

한국의 영토 분쟁하면 독도를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일본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독도는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명기하며 최근 한국을 자극하기도 했다. 이처럼 각국은 영토분쟁을 통해 총성 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 자원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영토에 대한 고찰이 이뤄졌고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은 영토 분쟁으로 속앓이 중 이다. 현대뿐만 아니라 과거 조선도 영토 분쟁으로 골치 아팠는데 그 역사를 살펴보자.

조선과 청나라의 엇갈린 백두산정계비 해석

백두산정계비(白頭山定界碑)는 1712년 백두산에 세운 비석으로 조선과 청의 국경선을 표시한 경계비이다. 비문에는 ‘서쪽의 압록과 동쪽의 토문을 분수령으로 삼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훗날 러시아와 일본의 제국주의가 노골화되면서 청나라와 조선의 영토에 관심을 가졌고 만주 일대를 탐문하며 백두산정계비를 다시 관찰하게 된다. 1883년 비석 내용을 다시 조사하니 조선과 청은 '토문'이라는 지명을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청나라는 두만강 일대를 말하고 조선은 쑹화강 일대의 한 부분이라 주장하니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조선이 말한 쑹화강 일대 간도라 불리는 지역은 많은 조선인이 이주하여 살고 있었으며 대한제국에 이르러 간도에 대한 행정 영향력까지 미치고 있었다. 그러나 일제 식민지를 거쳐 독립한 한국은 간도에 대한 부분까지 챙기지 못했고 결국 압록강과 두만강 이남까지만 조선의 영토로 인정받게 되었다. 

 

왜구의 본거지 대마도 정벌한 조선

일본 본토보다 한국과 더 가까운 섬이 대마도이다. 과거 대마도는 삼국시대에 신라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의 왜구가 조선과 중국을 수탈하기 위해 대마도를 본거지로 삼았다. 왜구들의 본거지로 세 차례나 토벌 원정에 나선 조선은 대마도를 경상도로 편입시킨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겪으며 조선이 대마도에 미치는 영향력이 약해졌고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단행하며 대마도를 간접 통치에서 직접 통치로 바꾸게 된다. 한국에 가까운 대마도를 조선이 신경 쓰지 않았던 이유는 쌀을 생산하기에 적합하지 않았고 행정력을 동원하기에 큰 비용이 필요로 하여 직접적인 관리를 하지 않고 지배와 종속관계를 유지했다. 훗날 일본에 독립하며 일본이 무력으로 지배한 영토에 대해 회복을 주장할 기회가 주어지자 한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대마도를 한국의 영토라 주장하며 반환을 요구했다. 한국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대마도는 일본의 영토로 인정되었다.

 

총성 없는 전쟁인 영토 분쟁으로 나라끼리 껄끄러운 경우가 많다.
과거 조선은 간도와 대마도라는 영토에 대한

지배권을 명확하게 하지 못해 후대에 이르러
영토에 대한 지배권을 주장하기 어려워지고 말았다.
몇천 년을 지배하던 영토를 끝까지 잘 관리했다면
지금 한국의 영토는 또 다르지 않았을까?

 

한국과 일본에 얽힌 이야기를 청랑이 추천합니다.
 

일본이 신라 때문에 골치 아팠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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