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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랑 이슈 식견

과거 노비의 몸값은 얼마였을까?

by JadeWolveS 2023.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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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가치를 돈으로 매기던 시대

인간의 가치를 물건처럼 돈으로 매기던 시대가 있었다. 서양에서는 노예라고 불렸고 조선시대에는 노비라 불렸다. 그들은 외양간에 있는 소나 말보다 못한 삶을 살아야 했다. 신분의 차별을 받던 이들은 유럽에서는 프랑스혁명으로, 조선에서는 동학사상을 통해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은 모든 인간에게 존엄성과 평등권이 주어졌지만, 노예나 노비들은 이름 없는 하나의 동물에 불과했다. 과거 그들의 가치는 얼마였는지 살펴보자.

[일제강점기 때 함경남도 문천군 관노비 모습 출처:한국학 중앙연구원]

비극적인 노예 가치

남미에 살던 원주민들은 서양인들에게 옮은 천연두로 인해 많은 목숨을 잃었다. 유럽 국가들은 부족한 노동력을 아프리카의 흑인 노예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자메이카 섬에 운반된 흑인 노예만 66만 2,400명에 이르렀는데 흑인 노예를 사는 가격은 2~3파운드 정도였다. 흑인 노예를 아메리카까지 운반하면 1명당 15~30파운드에 팔 수 있었다. 노예 거래 한 번으로 1만 400파운드의 수익을 올릴 수 있었는데 이는 선원 400명의 1년 치 생활비와 맞먹는 수준이었다. 노예 한 명의 몸값이 선원 하루 일당보다 못했다는 것은 비극적이고 안타까운 역사다.

 

말보다 못한 노비의 가치

조선시대 초기에 말 한 마리 가격은 좋은 옷감으로 400~500필 정도를 줘야 살 수 있었다. 반면 150필만 있으면 살 수 있었던 노비는 말보다 못한 신세였다. 이런 세태를 태조 이성계에게 건의한 신하가 있었다. "노비의 가치가 말보다 못한 것은 가축을 중하게 여기며 사람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라 도리에 맞지 않다"고 하였다. 결국 노비의 몸값은 말 한 마리 가격과 비슷해졌는데 신분제가 폐지되기 전까지 노비의 몸값은 큰 차이가 없었다. 노비는 짐승보다 못한 대우를 받았고 태어난 자식들은 대대손손 노비로 살아야 했다.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당했고 동물보다 값어치가 없어 한 많은 인생을 살았을 노비들의 마음을 그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인간의 존엄한 가치를 인정받아 평등권을 보장하기 전까지
흑인들은 백인들의 하루 일당 값도 못 한 돈에 팔려야 했고,
조선시대 노비들은 말 한 필의 삼분의 일 가격에 팔려야 했다.

 

노비 출신의 반전이 궁금하다면 청랑이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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