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솥비빔밥이 자국 문화유산이라고 주장하는 중국
한국의 대표 전통 음식 돌솥비빔밥이 중국의 성(省)급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나아가 중국 정부는 동북공정을 통해 만리장성이 한반도까지 있었다는 역사 왜곡을 하고 있습니다. 동북공정(東北工程)은 중국이 동북부 만주 지역 역사를 연구하기 위한 사업으로 한반도의 역사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숨은 의도가 있어 보입니다. 만리장성(萬里長城)의 건립은 북방 유목민족의 침공을 막기 위해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의 나라들이 각자 쌓은 성벽을 진나라 시황제 때 연결하는 대규모 토목 사업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산해관(山海关)까지 이어진 만리장성은 중국 명나라 시대에 추가로 연장되어 오늘날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고대 한국에 있었던 고구려, 고려의 장성을 만리장성의 일부로 취급하며 만리장성이 한반도까지 이어졌다는 낭설을 펼치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만리장성 같은 역할을 한 장성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당나라의 침략을 막기 위해 고구려가 세운 천리장성
당나라는 고구려를 무리하게 침공한 수나라가 무너지자, 이틈을 이용해 선비족이 세운 나라입니다. 선비족은 만주 지역 일대에 중심을 두고 살았던 유목민족입니다. 고대부터 고구려와 악연이 깊었던 선비족은 중국 침략하여 중국의 혼란기를 끝내고 통일 왕조인 수, 당나라를 세웁니다. 당나라는 수나라 때 이루지 못한 선조의 땅 만주를 얻기 위해 고구려를 침략 준비를 합니다. 고구려는 수나라와 전쟁으로 국력 소모가 컸던 탓에 장성을 쌓아 공격에서 수비로 전환합니다. 천리장성(千里長城)은 631년(영류왕 14년)에 축조를 시작한 성입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는 요동 만주 벌판의 부여성에서 동남쪽으로 바다까지 1천여 리에 걸쳐지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성을 축조하는 데는 무려 16년이 걸렸으며 축성의 임무를 연개소문(淵蓋蘇文)이 맡기도 했습니다. 고구려 천리장성은 기록이 많지 않고, 사료가 부족하여 중국은 고구려 천리장성을 만리장성의 일부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거란과 여진의 침략을 막기 위해 고려가 세운 천리장성
고려는 고구려 정신을 이어 세운 국가입니다. 그러나 만주 일대에서는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불리며 고구려의 뒤를 이었던 발해를 멸하고, 무섭게 성장한 거란족이 있었습니다. 거란족은 만주 일대에 살던 부족으로 고구려, 수, 당나라의 지배를 받던 유목민족입니다. 고구려는 형제의 나라 발해를 멸한 거란과 친하게 지내지 않았습니다. 거란은 중국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해 송나라와 친한 고려를 공격합니다. 고려 거란 전쟁은 3차에 걸쳐 치러졌으나 고려의 승리로 끝납니다. 고려 조정은 거란의 침략에 대비하는데 국경을 중심으로 장성을 쌓아 방어하는 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1033년 고려 9대 임금 덕종은 유소(柳韶)에게 명해 압록강 어귀에서부터 동해의 도련포까지 성을 쌓도록 했습니다. 천리장성(千里長城)은 한반도에 남아있는 가장 규모가 크고 긴 성입니다. 높이 8미터, 길이 393km에 달했고 공사 기간도 12년이나 걸렸습니다. 천리장성은 기존에 있는 성을 중심으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후 천리 장성은 북방에 여진족과 몽골족의 침략을 막는 방어막이 되어주었습니다. 유럽까지 진출했던 몽골군도 고려 침략에 애를 먹었고, 결국 혼인 관계를 통해 부마국으로 고려를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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