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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랑 도서 추천

대한민국 부동산 부의 역사

by JadeWolveS 2023.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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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부동산 부의 역사'를 읽고 정리한 내용을 공유합니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

코로나 이전 시대에 전문가의 의견이 담긴 책들을 봤을 때 여러 가지 의견이 있었지만 큰 흐름은 같았습니다. 이제는 코로나 시기를 겪은 현재 전문가의 의견을 살펴보기 위해 독서 방향에 변화를 주고자 했습니다. 이 책이 특히 교육, 네트워크 형성에 대한 관점을 고찰했기에 먼저 읽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부동산 부의 역사 출처 : 교보문고]

책 소개

교육은 네트워크 형성에 직결된다. ‘도심을 떠나는 것’이라는 일반적 해석과 달리 서울의 도심 집중 현상이 가속화된다.

교육 환경

좋은 학군은 예나 지금이나 선호 지역 1순위다. 교육에 대한 열풍은 고려시대부터 있었다. 경북의 선산은 교육 네트워크의 선순환 구조를 보여준 지역으로 인재를 배출한 후 위상이 높아졌다. 또한, 교통의 요지, 농업 발달, 인구 팽창이라는 요건이 더해지며 조선에서 손꼽힐 만한 지역으로 부상했다. 조선은 수도 천도 후 명문세가를 움직이기 위해 한양에 4개의 명문 학교를 세웠다. 신사임당, 정약용 등 다수의 위인도 ‘인 한양’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며 자식 교육을 실천했다. 교육의 목표는 결국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다. 남들보다 더 ‘좋은 학교’에 가는 것과 거기서 만난 ‘좋은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것 두 가지다. 부자들에게 교육은 위 목적 중 후자에 대해 힘을 쏟는다. 너무 대단한 것이 아닌, 나의 고민을 진심으로 함께 나눌 수 있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주위에 많아지는 것이 진정한 네트워크다.

직주근접

일자리 많은 곳에 돈이 몰리는 건 당연지사다. 고려 개경, 조선 한양에서 동네의 가치는 궁과의 거리로 판단했다. 중촌 지역은 역관들이 모여 지내던 곳으로 큰 부가 모여있던 곳이다. 이 중촌이 지금의 종로 상권이 있는 곳이다. 남촌 지역(충무로, 명동, 남산동, 인현동, 회현동 일대)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의 주거지로 낙점되면서 일본의 자본이 집중되기 시작하며 전성기를 맞았고 명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한양으로 올라온 이주민은 마포나 용산으로 터를 잡았을 것이다. 당시 한강변 일대에는 임시 노동직이 발달했다. 고소득 직장이 어디로 이동하느냐에 주목하자. 전통 기업들은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지역을 선호하는데 이는 현재의 가치를 끌어올릴 힘을 본인들이 가지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급여 상승분은 그 지역의 아파트 가격 상승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소득이 높아지며 ‘접근성’이라는 측면을 더욱 중요시한다.

 

교통 호재

길이 있는 곳에 1등 도시가 있다. ‘트로이 목마’로도 유명한 트로이 vs 그리스의 전쟁 이유는 에게해와 흑해 사이의 무역 거점의 장악하기 위해서다. 금관가야 또한 백제, 신라, 왜가 연결되는 무역 거점이었기에 중개 무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충주는 육로(동래에서 한양으로의 가장 빠른 길)와 수로(남한강)의 교통을 잡고 있다. 왕건이 통일 전 충주 유씨 가문과 긴밀히 연합한 것만 봐도 충주의 가치를 알 수 있다. 세금을 거두기 위해서는 교통이 필수였고 당시에는 육로보다는 수로가 더 효율적이었다. 고속도로는 돈이 돌게 하는 국토의 혈관이다. 도로가 ‘어디’와 ‘어디’를 연결하느냐가 중요하다. 철도는 있는 노선만 이어 붙여도 상승효과가 크다. 고속철도는 통근 범위의 개념을 바꿨다. 고속도로 지하화는 소음, 분진 문제를 한 방에 해결했다.

자연환경

자연이 부동산과 부의 지형을 바꾼다. 소금을 구할 수 있는 지역의 중요도가 높았다. 서울은 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하면서 인천과 가깝다. 조선 시대 인천은 대표적인 소금 산지이다. 신라가 주변 소국을 통합하고 중앙집권 국가로 오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도 울산 지역의 토철 광산(철광석, 당시 구하기 힘들었음)이 있었기 때문이며 항구로도 이용이 가능했다. 이황은 황무지를 이앙법을 이용해 옥토로 바꿔 부를 일으켰다. 이젠 자연환경도 인공으로 만들어내는 시대다. 유수지는 복개로 해결하고 유수지에 덮개를 씌워 아래는 물, 위로는 건물을 지을 수 있다. 서울 영동(강남 + 서초) 지역이 낮은 지대로 인한 수해를 과학기술로 해결하며 지어졌다. 1, 2기 신도시는 호수와 중앙공원을 만들어낸 시절이다. 이제는 조경 단지가 필수로 다가온다. 주한미군, 군부대 이전 부지는 번듯한 자리로 개발의 핵심으로 자리한다.

도시 계획

고려는 수도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하기 위해 개경 시장 5년간 폐쇄했다. 개경 주민들에게 한양 토지 무료 나눴고 학교의 신설 등의 정책을 펼쳤다. 조선 시대 4군 6진은 군사적 목적이 더해진 신도시다. 그중 4군은 폐사군으로 불리며 지배층의 착취를 벗어나기 위한 지역 농민들이 눌러살게 되면서 개발을 시작했다. 정조의 신도시는 수원 화성이다. 화성 상인들에게 인삼의 무역과 판매 독점권을 줘서 부유하고 상업에 밝은 수원 사람들을 신도시로 이주시켰다. 10개년 계획을 34개월 만에 마무리 했지만, 한양을 능가한 상업지구는 아니었기에 동력이 사그라들며 실패했다. 영등포구는 신길동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준공업지역이지만 대부분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으며 지식산업센터도 들어섰다. 구로공단 또한 동일하다. 성수동, 문래동 또한 원래 공장 단지였으나 공업이 동력을 잃으며 변화했다. 현재 1, 2기 신도시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3기 신도시를 짓고 있다. 이는 현실화 가능성이 떨어진다. 지금까지는 빈 땅을 새롭게 개발하려고만 했지만 이제는 기존의 도심을 효과적으로 개발하겠다는 생각이 등장했다.

 

다섯 가지 키워드 중 특히 교육에 주목하자. 고소득과 교육은 정의 상관관계를 가진다.


교육이 인맥 네트워크 형성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교통의 발전이 신도시나 중간 거점 도시의 부흥보다는
쇠퇴를 가져오고 있다고 생각하며 일본처럼 이에 대한 큰 흐름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 봅니다.
책의 마지막에 구도심의 정비 사업이 앞으로 다시 뜰 것이라는 말에 크게 동감하며
복합센터와 같은 형태가 개발되고 콤팩트한 도심 형태를 가질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 이야기와 현재를 비교해서 설명하는 부분이 인상 깊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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