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정책에도 계층 간의 격차는 점점 벌어져
한국 정부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고자 신혼부부가 결혼할 때 부모에게 재산을 증여받는 한도를 5천만 원에서 1억 5천만 원까지 증액하기로 하였다. 천만 원 이상부터는 40%의 증여세가 발생하는데 한도를 올려 신혼부부들이 집을 살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국민은 부모에게 1억 5천만 원의 증여를 받을 수 있는 자식은 그렇게 많지 않다며 부자들을 위한 정책이라고 아쉬워하고 있다. 경제도 힘들어지고 임금 격차도 벌어지면서 상류층과 중산층의 차이도 벌어지고 있다. 정부도 계층의 격차가 커지는 것을 우려하여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으나 쉽게 줄이기는 어려워 보인다. 과거 계급의 격차가 심해지면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고 당시 정부가 어떻게 대응했는지 살펴보자.
자국민만을 위한 정책으로 무너진 로마
로마는 이탈리아반도에 있는 도시에서 시작하여 유럽 지역을 처음으로 정복한 국가였다. 작은 도시에 불과했던 로마는 주변 도시들을 정복하고 연맹을 맺었다. 당시 지중해를 장악하고 있던 카르타고와 상대로 싸워 1차 전쟁에서 이기며 큰 성장을 가져왔다. 그러나 카르타고의 영웅 한니발(Hannibal)이 알프스산맥을 넘어 이탈리아반도를 넘어오자, 로마는 일순간 흔들렸지만, 로마의 연맹 도시들은 카르타고에 저항하며 로마를 도와주었다. 로마는 카르타고를 완전히 멸망시키고 지중해 강자로 성장하면서 끊임없는 정복 전쟁에 돌입하였다. 로마는 정복 전쟁을 통해 얻은 수확물을 로마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로마는 풍족했지만, 로마의 연맹 도시들은 로마의 잦은 군사 파견 요청과 전쟁으로 얻는 수확물이 없어 가난해지자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로마의 연맹은 이에 반발하여 동시에 전쟁을 일으켰고 로마는 당황하며 연맹국에도 로마 시민권을 부여하며 파국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 정복한 식민지역민에게는 로마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았고 마찬가지로 그들도 세금과 부역을 지면서 로마의 배만 불리자, 반란을 일으켰고 결국 로마는 게르만족에 의해 무너지게 되었다.
귀족에게 이권을 빼앗기 부르주아가 일으킨 프랑스 혁명
근대 민주주의의 시발점이라 부를 수 있는 프랑스 혁명을 살펴보면 귀족에게 자신들의 이권을 빼앗긴 부르주아가 일으킨 반란이었다. 당시 프랑스는 루이 14세가 왕권 강화를 통해 귀족들의 힘을 누르고 그들의 재산을 빼앗았다. 귀족들은 루이 14세에 잘 보이기 위해 재산을 내놓아야 했고 그들은 자기 재산을 채우기 위해 부르주아를 이용하여 돈을 벌기 시작했다. 부르주아가 큰돈을 벌기 시작하자 이를 시기한 귀족들은 각종 세금을 통해 그들의 재산을 정당하게 빼앗기로 한다. 부르주아도 너무 많은 세금에 결국 길거리로 나앉았고 하층민의 삶도 궁핍해졌다. 왕족과 귀족들은 밤새 연회를 열기 바빴고 궁정 밖은 굶어 죽는 백성이 많았다. 백성은 세금을 내다 죽든 굶어 죽든 죽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사고에 이르렀다. 귀족들은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 마리아 앙투아네트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고 말도 안 되는 소문을 퍼트렸다. 결국 이 소문에 프랑스 민중은 분노하게 되었고 그녀를 처형하면서 루이 16세까지도 죽이며 혁명 정부가 탄생하게 되었다.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격차가 점점 커지자
로마는 동맹국으로부터 공격받아 무너지게 되었고
프랑스는 민중의 분노로 혁명 정부가 탄생하게 되었다.
현재의 한국도 경제적 격차가 점점 벌어지면 커다란 혼란이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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