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로 매년 뜨거워지는 여름
북반구는 6~10월이 되면 태양에 가장 가까워지면서 대지가 달궈진다. 게다가 인류의 발전으로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면서 이란에서는 온도가 55도까지 올라가며 야외 활동이 불가능한 수준까지 이르게 되었다. 한국도 예외가 될 수 없고 매년 더욱 뜨거워지는 여름을 사람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보내고 있다. 국민은 권력자들이 여름을 어떻게 어디서 보내는지 관심을 가진다. 과거 왕들은 여름을 어떻게 보냈을지 알아보자.
조선 임금의 피서지 경회루
조선의 왕은 최고 권력자였으나 더운 여름에 시원한 곳으로 피서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 이유는 왕이 한 번 행차하는 데 드는 비용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조선 왕은 궁궐에서 더위를 피할 방안을 마련해야 했다. 연못이 있는 경복궁과 계곡물이 흐르는 창덕궁 후원이 왕의 주요 피서지였다. 또 왕은 더운 날 찬물에 밥을 말아 먹거나 얼음물에 담가둔 수박과 참외를 먹으며 여름을 났다고 한다. 조선의 왕은 최고 권력자라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피서를 보냈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궁궐에 틀어박혀 물가 근처의 그늘이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서태후의 여름 별궁 이화원
중국 베이징에 가면 꼭 가봐야 하는 곳이 명나라와 청나라의 궁궐이었던 '자금성(紫禁城)'과 서태후가 재건한 '이화원(颐和园)'이다. 서태후는 청나라 말기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황후이며 서궁에 머물러 서태후라 불리게 되었다. 청나라가 빠르게 망하는 도화선이 된 것은 서태후의 사치에 있었는데 대표적 상징물이 바로 이화원이다. 이화원은 과거 금나라 시대부터 원나라에 이어 인공 호수로 만들어졌다. 이후 청나라의 건륭제(乾隆帝) 때 크게 고쳐 청의원(淸誼院)으로 불렸으나 서양의 침략에 불타고 만다. 이후 서태후는 군대에 쓰일 자금을 이화원을 재건하는 데 사용하였다. 이화원은 호수에서 파낸 흙을 쌓아 만수산(萬壽山)을 만들었고 호수의 물을 끌어와 쿤밍호(昆明湖)가 되었다. 서태후는 여름이 되면 자금성을 떠나 이화원에 머무르며 청나라의 대소사를 결정하였다.
인간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무더위를 피하고 싶어 한다.
조선의 왕은 비용 문제로 궁궐 안에 있는 경회루나 창덕궁 정원에서 피서를 보냈다.
서태후는 건륭제 때 지어진 이화원을 더 크게 재건하여 여름 별궁으로 삼았다.
과거 왕들의 피서 방식이 나라의 국력에 따라 달랐듯
현대에는 자산의 규모에 따라 사람마다 피서를 즐기는 방식이 다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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