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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랑 교육 식견

조선시대판 수능, 과거시험은 언제부터 준비했을까?

by JadeWolveS 2023.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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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시의 최종 관문 수능

1994년 이후 대학교 입학을 위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줄여서 '수능'이라 불리는 이 시험은 대학교에 가기 위해서 꼭 치러야 했고 매년 11월 셋째 주 목요일은 국가와 국민도 수능에 맞춰 일과를 시작한다. 수능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성적으로 줄 세우는 문제가 논란이 되자 그 대안으로 다양한 역량을 평가하는 '수시'가 생겼다. 그러나 수시도 공정성에 문제가 제기되면서 다시 수능의 영향력이 커지게 되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 공부의 마침표라 불리는 수능 준비 과정에서 많은 학생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과거에도 입시 준비를 하며 스트레스받았던 수험생을 살펴보자.

 

조선시대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양반들 출처:국립중앙 박물관

양반의 과거 시험 준비 시작은 결혼

조선의 신분제는 일률적으로 규정하기 어려우나, 크게 양반, 중인(中人), 상민(또는 상인(常人)), 천민의 4계급으로 나누어진다. 그중 양반이 가장 높은 계급이었다. 양반의 자식으로 태어나는 순간 과거시험은 숙명이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경쟁률은 5만 대 1로 매우 치열했다. 위대한 성리학자 퇴계 이황 선생도 3번이나 낙방하였다. 양반 자제의 과거 시험 준비는 결혼하면서 시작되었다. 조선시대 남녀가 결혼하면 남자는 한 집안의 가장이 되어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양반은 체면상 농사일을 할 수 없었기에 관직에 나가 녹봉을 받으며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였다. 그래서 양반은 결혼이 곧 과거 시험 준비의 시작이었다. 어린 나이부터 부모님 눈치에 아내 눈치까지 봐가며 입시 준비를 했으니 그 스트레스는 현재 수험생보다 더 컸을 것이다. 현모양처의 어머니라 불리는 신사임당(申師任堂)도 남편 이원수(李元秀)가 과거 시험 준비를 게을리하자, 잔소리했으니 양반으로 태어난 게 마냥 좋은 것은 아니었다.

 

조선시대 승경도 놀이  출처:네이버 이미지

승경도 놀이로 조선시대 관직 외워

양반도 과거 준비를 하다 보면 잠시 쉬고 싶을 때가 있었다. 부모는 쉬는 것도 공부의 연장선상이라 생각했고, 승경도(陞卿圖)라는 주사위 놀이로 자녀들에게 조선시대 관직을 외우게 하였다. 승경도 놀이는 주사위를 돌려 맨 아래쪽 종9품 관직에서부터 위로 갈수록 관직이 높아지는 종1품 관직이 적힌 종이에 말을 움직이는 놀이다. 주사위를 던져 말이 이동한 칸에 해당하는 관직이 지닌 힘을 쓸 수 있도록 하였다. 승경도 놀이를 하면서 관직명과 관직이 지니는 권한을 가르쳤다. 과거 시험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게 하는 경고장 역할도 하였다. 과거 시험 합격이 어려웠으므로 양반 자제들에게 승경도 놀이는 미래 본인의 모습을 연기해 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쉬면서 하는 놀이까지 공부로 이어지는 스트레스를 받았던 조선시대 수험생을 보면 현재 의대 준비를 위해 여가도 없이 공부만 하는 청소년들을 보는 것 같다.

 

조선시대 신분상 지배층이었던 양반 자제들에게
과거시험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결혼하자마자 시험 준비를 해야 했고
쉴 때 하던 놀이조차 시험과 관련된 놀이였다.
조선시대 양반에게 과거는 합격해야 끝나는 시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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