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 한국 가요의 시작을 알리다
한국의 대중가요와 트로트에 대해 세계가 주목하고 열광하고 있다. k-pop이라 불리는 한국 가요는 국가적 지원과 미래를 보고 투자한 1세대 뮤지션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더 깊숙이 들어가서 민중들의 슬픔을 달래며 함께한 한국의 민요와 가요들은 일제강점기 한국의 스타일을 키워낸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천한 계층으로 설움을 받기도 했던 기생들이 한국 가요 문화의 실마리가 되어준 것이다. 한국 가요의 시작을 알렸던 기생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일제 강점기 시대의 대중스타 왕수복
한국 가요의 서막을 열었던 사람은 왕수복(王壽福)이라는 기생이었다. 그녀는 평양 기생권번의 기생 학교를 나와 레코드 대중가수로 진출하기 위해 준비했다. 콜롬비아사에서 폴리돌 레코드사로 소속을 바꾸어 유행가의 여왕으로 등장했다. 왕수복은 체격이 좋았고 목소리도 우렁찼다. 기생 학교에서 배웠던 민요의 기교와 일본의 창법을 버무려 ‘고도의 정한’이라는 노래로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왕수복의 뛰어난 가창력이 세계에 알려지면서 평양 기생들을 소속사로 편입하기위해 싸움 양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녀가 개척한 레코드 시장은 유행가, 신민요, 신가요, 유행소곡 등 다양한 갈래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연예인의 시초는 기생
기생은 재주와 끼도 많아야 했지만, 스캔들을 만들어서 대중들의 관심도 끌어야 했다. 지금의 연예인들이 이슈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주목받으려는 것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근대의 기생들은 라디오 음악 방송 출연을 시작으로 음반을 제작했다. 초창기 영화도 기생 출신의 영화배우들이, 예능의 기예도 기생들이 각각 중심을 잡았다. 1900년대 '파리 만국박람회'에 조선의 특산품으로 기생을 출품하려고 했던 점만 살펴봐도 조선 기생의 상품성은 대단했다. 기업들은 상품을 만들어서 홍보하기 위해 인지도 높은 연예인들을 모델로 사용한다. 경인 철도 개통 초기에 손님이 없자 마케팅 수단으로 '인천 기생 초선'이라는 식으로 주요 역 정거장 마당에 기생들 이름의 푯말을 꽂아놓고 라이브 공연을 벌였다. 그 결과 승객들을 유인하는 데 한몫했다. 신문, 포스터, 표지 사진에도 기생들의 얼굴을 앞세운 것만 봐도 현재 연예인들의 일은 과거 기생들이 처음부터 한 일이었다.
지금 전 세계를 열광시키고 있는 k-pop의 시작은 일제 강점기 시대부터였다.
근대 한국 음악의 시작을 알리며 스타가 된 기생 왕수복.
평양 기생권번 출신인 왕수복은 한국 민요의 기교와
일본 창법을 섞은 가창력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파리 만국박람회 특산품 출품의 고려 대상이기도 했던
조선 기생의 상품성은 대단했으며
그들은 우리나라 최초의 연예인인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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