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남아있는 일제 강점기의 흔적
조선은 흥선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 정책으로 서양 문물을 빠르게 받아들이지 못한 결과 당시 세계적으로 확산 중이던 제국주의의 희생양이 되었다. 일본도 대국인 청나라와 러시아를 차례로 격파하면서 조선의 통치권 우위를 점하며 식민 지배하게 된다. 35년이라는 일제 강점기를 통해서 한국은 백성부터 영토까지 일본에 처참하게 유린당했고 민족 문화를 말살하려는 정책으로 인해 일본식 성명을 쓰게 하고 한글은 쓰지 못하도록 교육했다. 1945년 광복을 맞이하고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제 강점기의 아픈 역사적 단어들이 쓰이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조선 백성의 고된 삶이 만들어낸 단어 '야매'
친구들끼리 장난으로 전문가 흉내를 내지만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속된 말로 '야매'라고 부른다. 일본어지만 한국어보다 곧잘 쓰이게 된 이 단어는 어디서부터 시작이 되었을까? 일본이 조선을 합병한 이후 조선 쌀은 일본으로 건너갔다. 조선에서 생산된 쌀의 40%가 일본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조선 백성은 식량난을 겪어야 했다. 더욱이 일본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상대로 침략전쟁을 벌이고 흉년까지 들면서 일본은 쌀 강제 출하 명령을 내리게 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개인이 쌀을 마음대로 사고팔지도 못하게 되었다. 할 수 없이 민중들은 부족한 쌀을 몰래 사게 되었는데 이때 생긴 일본말이 '야미쌀'이다. 야미(闇)라는 말은 통제품을 몰래 산다는 말로 사용되면서 어느덧 ‘야매’라는 말로 음변되었다. 야매라고 쓰는 단어 속에는 그 당시 굶주림으로 쌀을 일본 정부 몰래 사려던 조선 민중의 고된 삶이 담겨 있었다.
사재기가 만들어낸 단어 '경제범'
일본은 세계 2차대전에 독일 편에 서면서 미국과 러시아, 중국을 상대로 고전하기 시작했다. 또 조선과 일본에서 물자를 생산하거나 수송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리하여 조선에서 생산되는 필수품들은 하루가 다르게 가격이 급등했다. 이러한 시세 차익을 노리는 상인들의 횡포를 막고자 일본은 특별 조치를 내리게 된다. '경제범'이라는 죄목을 만들어서 물가를 조정하는 상인들을 엄하게 다스리려고 했다. 경제범을 잡아들이다 보니 감옥에 자리가 없었고 시장경제를 엄격하게 통제하다 보니 조선에서 물건을 생산하는 일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결국 조선 경제는 더욱 피폐해졌고 일본은 잘못된 경제정책으로 패망의 길을 가속하게 되었다. 지금도 사업가들이 비자금을 주거나 부정한 돈거래가 있으면 경제사범이라고 부르지만, 시작은 일제강점기의 물가 불안정을 이용한 상인들을 싸잡아 이르는 말이었다.
일제 강점기를 통해 조선에서 싹트기 시작한 말들이 있다.
쌀이 부족해서 몰래 사던 쌀을 '야미쌀'이라 불렀는데 훗날 '야매'라는 단어로 바뀌었다.
전쟁이 지속되면서 물가 변동이 커지며 사재기하는 상인들을 응징하려고 만들어진 죄목 '경제범'이라는 신조어는 지금도 한국 기업인들에게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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