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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랑 이슈 식견

분열을 멈추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by JadeWolveS 2023.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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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자는 대립 세력 사이에서 선택 어려워

윤석열 대통령이 자신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던 간호사법을 거부하면서 간호사들은 광화문에 대규모 집회에 나섰다. 반대로 간호사법을 지지했다면 의사와 간호조무사가 그 자리에 대신 나오거나 의료행위 거부를 했을지도 모른다. 통치자가 어느 한쪽 편을 든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어려운 선택이다. 조선 시대만 하더라도 노론과 소론의 대립은 왕의 골칫거리기도 하였다. 왕들은 대립하는 양쪽을 하나로 모으기 위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그들의 지혜를 살펴보자.

 

중국의 만한전석(만한전석의 메뉴는 아직도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만주족과 한족의 대립 완화 위해 만들어진 만한전석

만한전석(滿漢全席)은 청나라 강희제(康熙帝) 때 지배층인 만주족과 피지배층인 한족의 대립을 완화하고자 만들어진 대연회식이다. 안타깝지만 만한전석의 모든 메뉴는 완전히 맥이 끊긴 상태다. 그러나 강희제가 민족 간의 대립을 연회로 풀어보고자 했던 고심의 흔적은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강희제는 한족 출신 삼번의 난을 진압하고 청나라의 기틀을 다지며 옹정제(雍正帝), 건륭제(乾隆帝)까지 강건성세(康乾盛世)라 불리는 청나라의 르네상스를 여는 인물이 되었다. 또 소수의 만주족이 다수의 한족을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지배한 일은 유래가 없었다. 3명의 황제는 만주족과 한족이 서로 화합하게 만들어 청나라를 당시 가장 강성한 제국으로 성장시켰다.

 

탕평채 출처:네이버이미지

붕당의 균형과 화합을 의미한 탕평채

조선은 후기에 접어들어 붕당정치가 심해지고 있었다. 붕당(朋黨)이란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학맥에 따라서 형성된 집단을 일컫는 말이다. 붕당은 처음에 서로 다른 의견을 주고받으며 더 나은 정책을 펼치는 장점이 되었다. 그러나 점점 그 의미는 퇴색하고 붕당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움직이면서 올바른 정책을 펼 수 없게 되었다. 영조(英祖)는 붕당의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대립하는 집단이 균형을 이루도록 탕평책(蕩平策)을 실시했다. 탕평책은 한 집단에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고 약해진 집단에 권력을 나눠주며 균형을 잡는 정책이었다. 또 대립하는 집단과 같이 식사하는 자리를 만들어 탕평채(蕩平菜)라는 음식을 같이 먹도록 했다. 탕평채에 녹두로 만든 청포묵, 쇠고기, 미나리, 김은 반드시 들어갔다. 이는 각 붕당을 상징하는 사방신의 색을 상징했다. 탕평채는 골고루 비벼서 같이 먹도록 만들었는데 이는 서로 화합하며 조금 더 건설적인 붕당으로 성장하길 바란 영조의 혜안이었다. 신하들도 왕의 의도를 알았는지 영조 시대에 왜란과 호란으로 망가진 나라의 경제를 빠르게 회복하며 조선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

 

자기 뜻을 대변하며 대립하는 것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양쪽의 대화가 단절되고 대립하기만 한다면 결국 서로 자멸하는 길이다.
강희제는 만한전석이란 연회로 만주족과 한족을 하나로 뭉치게 했고
영조는 탕평채를 먹으면서 대립하는 붕당의 분위기를 완화했다.
리더는 대립하는 집단을 완화하는 방안을 찾을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역사 속에서 배울점을 청랑이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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