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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랑 이슈 식견

복날에 먹는 보양식, 원래 명칭은?

by JadeWolveS 2023.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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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양식을 세 번 나눠 먹는 삼복문화

과거부터 더위가 찾아오면 조상들은 삼복(三伏)이라 하여 세 번 나눠서 보양식을 챙겨 먹었다. 날이 더워지면 체온이 상승하고 기력이 쇠해지는 것을 막고자 몸에 기운을 돋아주는 음식을 먹었다. 오늘날 삼복의 대표 음식이 삼계탕과 보신탕이다. 현재 보신탕은 개를 키우는 인구가 급증하면서 식용으로 먹는데 혐오감을 드러내며 회피하는 음식이 되었다. 그렇다 보니 삼계탕이 삼복의 대표 음식이 되어 여름만 되면 삼계탕집 앞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복날에 먹는 대표 음식의 역사를 살펴보자.

삼계탕

대표적인 보양식 삼계탕

여름에 날이 더워지면 인체는 혈류속도를 높여 내부의 열을 땀으로 배출하여 체온을 유지하게 된다. 체내의 열이 빠져나가면서 혈류량이 차츰 줄어들게 되는데, 이때 체내는 속이 차가워진 상태라 찬 음식을 먹으면 내장 기관이 재기능을 못 하여 탈이 날 수가 있다. 닭은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 보양하는 성질이 있어 속이 차가워지는 것을 막는다고 적혀 있다. 닭의 이런 성질을 이용해서 조선 초기에 더위가 시작되는 초복부터 백숙(白熟)을 해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전기에 인삼(人蔘)은 서민들에게 비싼 음식이고 대중화되지 못했기에 삼계탕은 존재하지 않았다. 구한말에 조선 삼이 기력이 약한 사람의 원기를 보양한다고 하여 백숙에 같이 넣어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계삼탕'이라 불렀으나 인삼이 점점 유명해지고 귀해져 사람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자 '삼계탕'이라 바꿔 부르며 닭보다 인삼을 강조하여 오늘날 삼계탕이 되었다.

 

보신탕

몸을 보양하는 보신탕이 개장국으로 인식되다

인류가 문명을 일으키고 최초로 키웠던 동물은 개라는 설이 있다. 개는 인간과 오랜 시간 함께 했으며 질 좋은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고대 로마부터 프랑스까지 이상 기온 현상이 일어나자, 개고기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 황실에서도 개고기를 요리하는 요리사가 따로 있었고 조선 왕실에서도 개고기는 임금 수라상에 올라가는 음식이었다. 또 개고기는 부모님께 선물하는 값어치 있는 음식이었다. 개고기는 국으로 끓여 먹으면서 서민 사이에서 '개장국'이라 불리었다. 양반은 개고기 대신 소고기를 넣어 먹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육개장'이 되었다. 개장국은 돈 없는 서민이 먹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고깃국이었으며, 개고기가 몸을 따뜻하게 하는 성질이 있어 더위에 보양식으로 먹기도 좋았다. 조선시대에 대중에게 개장국은 널리 먹는 음식이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개고기를 먹는 것은 야만적이다는 인식이 있었고, 크리스트교 신자였던 이승만 대통령은 종교적 신념으로 개장국 이름이 마땅치 않아 '보신탕'이라 부르게 하였다. 본디 보신탕은 몸을 보양하는 음식을 총칭하는 말이었으나 이승만 정권 이래 보신탕은 개장국이라 인식하게 되었다. 이후 보신탕은 1988년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서양인들의 눈을 의식하여 판매가 금지되었고 '영양탕' 혹은 '사철탕'으로 불리게 되었다.

 

 

더위에 몸을 보양하기 위해 선조들은 삼복에 보양식을 먹었다.
닭은 몸을 따뜻하게 하는 성질이 있어 여름에 보양식으로 먹었고 지금의 삼계탕이 되었다.
인류에 좋은 단백질 공급원이었던 개고기는 개장국에서 보신탕으로 나중에는 영양탕으로 바뀌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삼복에 먹는 보양식의 이름이 만들어진 데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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