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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랑 인재 식견

역사 속 위대한 여장부는 누구일까?

by JadeWolveS 2023.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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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스도 두려워하는 이스라엘 여군

하마스 무장 세력이 이스라엘을 기습공격하여 인질을 잡아갔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도발에 맞서 예비군을 소집하여 반격에 나섰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하마스 대원 100명을 사살한 여군 부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군 부대는 카라칼 대대 소속으로 2000년대에 창설되어 여성이 60~70% 비율을 차지하는 남녀 혼성부대다. 여군도 남군과 똑같이 강도 높은 훈련을 받고 2012년 테러리스트 3명을 사살하며, 전투부대 배치에 대한 여론을 반전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후 여군도 군 복무를 수행하며 이스라엘 현역 군인의 여군 비중은 35%에 이르고 있다. 전쟁은 남성만 수행한다는 통념과 달리 여성도 훌륭한 성과를 냈던 역사를 알아보자.

 

<좌>강감찬 영정사진 <우> 최재효 역사 장편 소설 '설죽화 이미지' 출처:yes24시

여성인 사실을 숨기고 전투에 나선 설죽화

설죽화(雪竹花)는 고려 병사 이관의 딸이다. 거란군이 고려를 2차 침입하여 이관은 거란군에 맞서 싸우다 죽음을 맞게 된다. 그녀는 아버지의 죽음에 복수하고자 했다. 여자임을 숨기고 남장을 한 채 절에 들어가 무술을 익혔다. 1019년 거란의 제3차 침입이 일어나자, 설죽화는 귀주에 있는 강감찬(姜邯贊) 장군을 찾아간다. 연약한 그녀를 본 강감찬은 전쟁에 참여시키길 꺼렸다. 그러자 그녀는 창 다루는 솜씨를 보여주었고 강감찬은 백마 한 필과 창을 주며 소년군 선봉장으로 임명하였다. 그녀는 흰 말을 타고 청룡도를 휘두르며 싸우다 귀주대첩(龜州大捷)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강감찬은 시쳇더미 속에 그녀를 찾았는데 품속에서 이관이 남긴 시를 발견하여 그녀가 남장한 여자인지 알게 되었다. 이후 강감찬은 설죽화를 고려의 꽃이라 칭하며 공신의 칭호를 내리게 했다.

 

 

고구려 당나라 1차 전쟁 당나라군 진격루트 출처:네이버 이미지

고구려의 여성 수군 제독 연수영

연수영(淵秀英)은 연개소문의 누이동생이다. 역사적 기록에 이름이 나오진 않으나 중국의 야사인 서곽잡록(西郭雜錄)비망열기(備忘烈記)에서 등장하는 것을 보면 실존 인물로 보고 있다. 그녀는 642년 석성도사로 부임하여 당나라의 고구려 침략에 대비하여 고구려 수군을 증강하고 있었다. 고구려-당나라 1차 전쟁 당시 당나라는 바다와 육지를 통해 105만의 군사를 이끌고 침략하였다. 645년 8월 15일에 벌어진 대장산도해전(大長山島海戰)에서 당군은 1천여 척의 전함에 10만의 전투 병력을 동원하였으나 연수영의 고구려 수군에게 참패당하여 총 군세의 절반인 수백 척의 전함과 5만여 명의 군사를 잃었다. 그리하여 당나라는 해상을 통해 육지로 군량을 조달하는 정책이 실패한다. 연이어 안시성에서까지 대패하며 당나라는 줄행랑을 치며 지금의 북경까지 고구려에 뺏기고 말았다. 고구려의 수군 제독으로 알려진 연수영은 오빠들과 불화로 인해 말년의 기록은 없다. 고구려 수군은 역사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여성이 수군 제독으로 그 당시 동아시아 최강이라 불리던 당나라 군대를 상대로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고대에 여성은 전쟁에 참여할 수 없었다.
고구려와 고려시대에 여성이 전투에 참여해 큰 공을 세웠지만
전쟁은 남자가 수행하는 개념이 강해서 주류 역사에서는 찾기 어렵다.
그러나그들의 기록은 남아 후대에 전해지고 있다.
과거나 현재나 여자도 위대한 군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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