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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랑 이슈 식견

영원한 약자는 없다?

by JadeWolveS 2023.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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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민족 탄압하는 중국

중국에는 56개가 넘는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최근 신장지구에 살고 있는 위구르족에 대한 인권 탄압으로 중국은 각국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중국은 유구한 역사에 비해 한족이 지배했던 왕조는 많지 않다. 타민족이 한족을 지배했던 경우가 많았고 그들의 탄압에 못 이겨 반란을 일으켜 한족이 세운 왕조들이 나왔었다. 중국은 지금 소수민족을 탄압하면서 과거의 한족이 탄압받던 일을 반복하고 있다. 작은 부족에 불과했던 민족들이 중국을 지배했던 과거 역사를 살펴보자.

 

청 왕조 중국 통일 후 탄압받은 한족

여진족은 만주 일대에서 생활하던 유목민족이었다. 과거 고조선, 고구려, 발해의 지배 아래 있었으나 고려시대부터는 영향권을 상실하는 바람에 만주 일대는 소수 부족의 치열한 전쟁터가 되었다. 중국은 북방 민족의 침입을 두려워하여 춘추전국 시대(春秋戰國時代)부터 장성을 쌓고 있었다. 진시황(始皇帝)이 전국시대를 통일하면서 북방의 장성을 서로 연결한 것이 만리장성(萬里長城)이다. 유목민족의 침입을 두려워하던 한족은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으로 여진족들끼리 이간질했다. 그 결과 여진족들은 하나로 힘을 모으기 어려웠다. 하지만 혼돈의 시대에 영웅이 나타나는 법. 누르하치(努爾哈赤)는 조선과 명나라, 그리고 일본이 서로 전쟁을 벌이며 군사력이 약해진 틈을 타 만주 일대의 여진족을 통합했다. 여진족은 빠르게 성장하여 조선을 굴복시키고 명나라를 멸망시키며 청 왕조를 세우게 된다. 청 왕조는 만주족의 순 혈통주의를 중요시하며 피지배층인 한족을 철저하게 무시하며 차별을 하였다. 한족에 대한 우호적인 정책을 편 강희제(康熙帝)부터 청 왕조는 큰 발전을 이뤘으나 결국 한족에 대한 차별과 탄압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 채 신해혁명(辛亥革命)을 통해 청 왕조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여진족의 이간질 계략으로 탄압받은 몽골족

여진족은 만주 일대에서 성장하여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금나라를 세웠다. 금나라는 여세를 몰아 송나라의 수도까지 함락시켰다. 금나라는 유목민족으로 성장한 국가였기에 유목민족의 무서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북방의 여러 유목 민족이 서로 반목하도록 이간질했고 몽골족도 계략에 당해 큰 피해를 보았다. 몽골은 칭기즈칸(Chingiz Khan)이 나타나면서 부족을 하나로 통합하고 몽골 초원을 통일한다. 몽골은 그동안 조공을 바치며 탄압받았던 울분을 토해내듯이 금나라를 공략해 나갔다. 10만 남짓 되는 몽골군은 100만이란 대군을 가진 금나라를 격파했고 송나라까지 멸망시켰다. 몽골족은 정복국답게 다양한 민족들이 있었으며 능력을 중시하며 그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러나 한족에 대한 차별은 타민족에 비해 많은 편이었고 훗날 한족이 세운 명나라에 쫓겨 다시 몽골 초원으로 돌아가게 된다.

 

 

영원한 약자는 없다.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관계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한족에게 탄압받던 여진족은 청나라를 세워 한족을 탄압했지만,
신해혁명으로 다시금 한족에 의해 멸망했다.
여진족의 탄압을 받던 몽골족은 원나라를 세워 한족을 탄압했고
한족이 세운 명나라에 국운이 다했다.
민족에 대한 탄압은 훗날 대가를 치른다는 사실을
지배층은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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