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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랑 이슈 식견

자연재해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사례는?

by JadeWolveS 2023.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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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쟁의 명분 되는 자연재해

2017년 11월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은 한국을 혼란에 빠뜨렸다. 한국은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국가라는 인식을 무참히 깨부쉈다. 지진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세대들에게 포항지진은 큰 경각심을 심어주었다. 포항지진으로 포항에서 수능을 준비하던 학생들은 난처한 상황에 부닥치기도 했다. 이처럼 자연재해로 인해 곤란한 상황에 놓이자, 정부의 대처 방식에 대해서 물고 늘어지며 정쟁으로 몰고 가는 일들이 있었다. 과거에도 자연재해를 명분 삼아 백성과 권력가들을 흔들려고 했던 사건들을 살펴보자.

일본 관동대지진에 2만명이 넘는 조선인들이 학살당했다. 출처: 영남일보

 

이성적 접근 방식으로 견제 벗어난 천추태후

고려 7대 임금 목종(穆宗)의 어머니인 천추태후(獻哀王后)는 어린 아들을 대신에 12년간 고려를 섭정하였다. 그녀가 고려를 통치하는 동안 불만을 가진 세력들은 명분을 찾고 있었다. 반대 세력은 제주도에서 화산이 폭발하자 여자가 나라를 통치하여 불길한 일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제주도에 전공지(田拱之)를 보내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곳을 그려오게 했다. 전공지가 그려온 그림을 본 천추태후는 수학자 11명을 제주도로 보내 토지 측량을 해올 것을 지시했다. 반대 세력은 화산활동으로 생긴 제주도의 새로운 산을 불길한 징조라며 그녀를 권력에서 몰아내려고 했지만, 천추태후는 이성적 접근 방식으로 수세에 몰릴 뻔한 상황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일본 군부 전략에 학살당한 조선인

1920년 일본은 격동기에 접어들었다. 점령하고 있던 한국과 중국에서는 독립운동이 활발해지고 있었고 일본 내부에서는 사회주의와 이념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일본 군부는 일본 내 사회주의 세력을 축출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1923년 일본 관동(関東)지방에 대지진이 발생하자 군부는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켰다"라는 소문을 냈고 일본 군부는 계엄령을 발령하여 아무 잘못도 없는 조선인 2만 명을 대량 학살하였다. 식민 지배로 인해 살고자 일본으로 넘어왔던 조선인들은 터무니없는 소문 때문에 일본인들에게 이유 없이 죽어야만 했다. 이처럼 정치세력은 자연재해를 이용해 본인들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일이 있었다.
 
 
 

고려시대 반대 세력은
천추태후를 축출하기 위한 명분으로
제주도 화산활동을 이용했고
일본은 내부 결속을 위해
관동 대지진의 발생 원인을
무고한 조선인들에게 돌렸다.
시대가 변해도 인간이 막을 수 없는 자연재해를
정쟁으로 이용하는 집단들은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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