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세 탄압에 망명정부 세워 대항한 국가
조선은 일본의 식민 지배가 시작되면서 독립을 위해 중국에 망명정부를 세워 일본에 대항했다. 독일에 점령당했던 프랑스도 영국에 망명정부를 세워 훗날을 기약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티베트가 중국에 강제 합병되자 티베트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망명정부를 세워 평화적인 시위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라가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지도자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훗날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과거 피난 행렬에 올랐던 왕들을 통해 살펴보자.
거란군을 피해 일시적으로 후퇴한 고려 현종
고려는 개국 초기부터 북방에서 힘을 키워 발해를 멸망시킨 요나라와 국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요나라는 송나라를 공략하기 전에 후방을 안정시키기 위해 고려를 복속시키려 했다. 그러나 같은 민족인 발해를 멸망시켰다는 이유로 왕건은 요나라에서 보낸 낙타를 굶겨 죽이며 적대시했다. 고려에서 강조의 정변(康兆─政變)이 일어나자, 요나라는 이를 명분 삼아 40만 대군을 끌고 고려를 침공했다. 고려의 8대 왕 현종(顯宗)은 개경을 급히 벗어나 전라도로 향했다. 요나라가 고려군이 방비하고 있던 지역을 피하면서 공격해 오는 바람에 수도 개경은 미처 전쟁 준비를 하지 못했다. 현종은 전주를 거쳐 나주까지 400km가 넘는 피난 행렬을 하게 되었다. 고려는 태조 왕건 이후로 북벌을 준비하며 군사력을 키우고 있었기에 요나라에 허를 찔려 수도가 함락되긴 하였으나 고려의 다른 성과 군사들은 건재한 상태였다. 이후 고려는 요나라에 항복하는 서신을 보냈고 거란족은 이 서신을 갖고 돌아가는 길에 강동에서 양규(楊規)와 김숙흥(金叔興) 장군에게 큰 피해를 당하고 회군했다. 요나라가 2차 침략에서 얻은 것은 고려의 항복문서 하나뿐이었다. 현종은 왕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큰 전쟁을 치르며 고려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임금이었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북으로 도피한 선조
일본의 전국시대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명나라를 침략하기 위해 조선을 공격한다. 조선은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큰 전쟁 없이 지내면서 전쟁에 대한 경계심이 약해졌고 군사력이 매우 취약한 상태였다. 일본이 조선에 침략한 지 20일도 되지 않아 한양은 왜군의 수중에 떨어진다. 선조(宣祖)의 가마는 평양을 거쳐 의주까지 향했다. 왜군은 선조를 잡기 위해 거침없이 북진했으나 보급 지연의 문제가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명나라 지원군까지 도착하면서 전쟁의 흐름은 조선으로 급격히 기울게 된다. 조선의 각 지역에서 의병이 일어나 활약했고 남쪽 바다에서는 구국의 영웅 이순신(李舜臣)의 승전보로 마침내 왜군을 몰아낼 수 있었다. 조선은 일본과의 전쟁으로 전국이 폐허가 되었고 급격한 인구 감소를 겪어야 했다. 한양으로 돌아온 선조는 나라를 재건하는 데 노력하였다.
나라의 지도자는 외세의 침입에 떠돌이 생활을 하기도 한다.
고려 현종은 요나라의 침략에 개경이 함락되자 급히 나주로 피난 가야 했다.
선조는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한양이 함락되자 의주로 피난 가야 했다.
왕이 곧 나라라고 상징하던 시대에
왕이 포기하지 않으면 나라도 쉽사리 망국의 길을 걷진 않았다.
지도자가 힘든 시기에도 포기하지 않는 정신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지도자의 중요성을 알 수 있는 글을 청랑이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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