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 지키기 힘든 상황의 한국
한국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중립적인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최근 한국 정부는 미국 정부의 대러시아 정책에 따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민간인을 대량 학살한다면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세계 패권 다툼을 미국과 유럽이 연합하여 러시아, 중국에 대항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한국은 제3국으로 중립을 지키며 실리를 도모하면 좋겠지만 정치적 판단이 여의찮은 모양새다. 한국 정부와 비슷한 처지에 있었던 과거 사건들을 살펴보자.
명나라 청나라 사이 중립 외교 펼친 광해군
조선과 명나라는 임진왜란(壬辰倭亂)으로 많은 국력을 소비하게 되었다. 그 사이 여진족은 누르하치를 중심으로 흩어진 부족을 통합하며 세력을 키워 청나라를 세웠다. 요동반도까지 세력을 넓힌 청나라는 명나라를 공격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청나라는 명나라를 공격하는 동안 배후에서 조선이 공격하면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들은 힘을 키우면서 조선을 공략할 명분을 찾고 있었다. 이때 명나라에서는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준 것을 빌미로 청나라 정벌에 조선 군사 파병을 요청했다. 조선은 명나라 편에 선다면 국경을 맞대고 있는 청나라와는 전쟁을 선포하는 상황이 되었다. 광해군(光海君)은 강홍립(姜弘立)에게 명나라를 지원하다 전세가 청나라로 기울면 항복하라고 은밀히 지시했다. 결국 청나라가 조·명 연합군을 이겼고 강홍립은 인질로 잡혔으나 광해군이 말한 대로 청나라에 고하며 조선은 또 한 번의 참혹한 전쟁의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학(儒學)을 중요시하는 신하들 중심으로 신의를 지키지 않았다며 광해군을 몰아내는 인조반정(仁祖反正)이 일어났다. 인조는 청나라를 배척했고 정묘호란(丁卯胡亂)과 병자호란(丙子胡亂)이라는 전쟁을 통해 조선은 청나라 말발굽에 처참하게 짓밟히게 되었다. 50만 명이 넘는 백성들이 만주로 강제로 끌려갔고 인조는 치욕을 겪어야 했다.
유럽 강대국 식민 지배 피한 태국
라마 5세는 영화 "왕과 나"에서 유럽 여교사에게서 교육받는 왕자 중의 한 명으로 태국 짜끄리 왕조의 5번째 왕이다. 제국주의가 전 세계를 휘감고 있었고 동남아는 유럽의 강대국에 하나씩 식민지화되고 있었다. 동남아 국가에서 유일하게 식민 지배를 받지 않았던 국가는 태국이었다. 태국은 라오스와 캄보디아도 지배하는 큰 국가였다. 캄보디아는 영국, 라오스는 프랑스에 할양하며 영토의 반을 잃었으나 두 열강 사이에서 태국을 지켜낼 수 있었다. 태국은 왕자들에게 서구식 교육을 해 발 빠르게 근대화작업에 속도를 낼 수 있었고 지방까지도 근대 행정 시스템을 갖추어 빠른 근대화를 전국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태국은 식민 지배를 받지 않았고 전 국민은 태국 왕실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지금도 보내고 있다. 세계에 어떤 왕실도 이처럼 국민의 사랑을 받는 왕실은 없을 것이다. 한 명의 왕이 내린 결단과 과감한 정책은 백성들을 식민지 지배라는 고통을 겪지 않게 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말이 있다.
과거 조선도 명나라와 청나라의 힘겨루기에 중립 외교로 전쟁을 피할 수 있었다.
태국은 땅 일부분을 영국과 프랑스에 나눠주어 식민 지배를 벗어날 수 있었다.
현재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떤 결정을 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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