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보다 자식이 먼저인 시대로 변해
옛말에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대가족에서 핵가족 사회에 접어들면서 부모보다 자식 챙기기가 먼저인 시대가 되었다. 과거와 달리 부모님께 전화하기도 쉬워진 시대지만 자주 연락하는 자식은 드물다. 낳아준 부모님의 사랑을 감사하며 은혜에 보답한 훌륭한 자식들과 반대로 그렇지 못한 못난 자식들을 살펴보자.
최초의 효자로 기록된 향덕
'향덕(向德)'은 우리나라 최초로 문헌에 쓰인 효자다. 신라 경덕왕(景德王) 때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던 부모님을 살리기 위해 자기 허벅지 살을 베어 봉양한 인물이다. 향덕은 부모님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고통쯤은 아무렇지 않게 여겼다. 향덕의 지극한 효심은 주변에 알려졌고 소식은 경덕왕의 귀에 들어갔다. 경덕왕은 향덕에게 상을 내리고 비석을 세워 그의 효행을 널리 알렸다. 부모를 위해 자기 고통을 감수한 향덕의 행동은 지금 생각하면 무모한 모습도 없지 않아 있지만 부모보다 자기 편의가 먼저인 요즘 세태를 곱씹어 보게 한다.
불효한 아들을 끝내 이해한 이성계
이성계(李成桂)는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운 인물이다. 이성계의 자식 중 조선을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운 인물은 이방원(李芳遠)이었다. 그러나 이성계는 이방원에게 왕위를 물려주길 원치 않았다. 이방원은 왕자의 난을 2번이나 일으켰고 이성계와 함께한 개국공신들까지 죽이며 왕위에 오른다. 이성계는 아들의 행태에 혀를 내두르며 함흥으로 떠나버렸다. 이방원은 자기 잘못을 반성하며 신하들을 함흥으로 보냈으나 살아 돌아오는 이가 없었다. 신하들이 함흥에 가기를 꺼리자, 이방원은 이성계와 친분이 있던 박순(朴淳)을 보내기로 한다. 박순은 어미 소와 송아지를 끌고 이성계에게 갔다. 그는 강을 건너기 전 송아지를 나루터에 묶어두고 어미 소만 끌고 갔다. 어미 소가 구슬프게 우는 소리를 들은 이성계는 박순에게 어찌하여 우는지 물어보았다. 박순은 자식을 그리워하며 우는 소리라고 대답하며, 이방원의 서신을 이성계에게 전하고 다시 한양으로 향했다. 이성계는 박순이 떠나자, 신하들을 시켜 그가 만약 강을 건넜으면 죽이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나 박순은 강을 건너기 전에 이성계 군사들에게 잡혀 죽고 말았다. 이 일을 계기로 이성계는 이방원과 대립하는 일을 멈추고 한양으로 오게 되었다.
과거나 현재나 효자도 있고 불효자도 있다.
최초 효자로 기록된 향덕은 부모를 살리기 위해 자기 고통을 감내했고 그의 효행은 널리 알려졌다.
이성계는 아들인 이방원의 행태에 실망하여 함흥으로 떠났으나
잘못을 반성하고 뉘우치자 끝내 이해하며 자식의 곁으로 돌아왔다.
부모보다는 자식이 먼저인 시대로 변한 지금 효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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