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으로 귀환한 홍범도 장군의 유해
홍범도 장군은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으로 일본군을 상대로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에서 큰 승리를 거둔 독립 영웅이다. 당시 일제의 탄압을 피해 만주와 연해주로 옮겨갔던 많은 조선인은 척박한 땅을 개간하여 풍요로운 땅으로 일구었다. 소련 당국은 성실하고 뛰어난 생산성을 가진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켜 식량 생산을 증대하고자 했다. 홍범도 장군도 고려인 중 한 명이였으며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해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이후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유해는 결국 한국으로 봉환하였으나 공산당 가입 이력으로 인해 논란이 되고 있다. 홍범도 장군의 공과는 차치하고 홍범도 장군처럼 유해도 찾기 어려운 독립 영웅들에 대해서 알아보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독립 영웅 안중근
안중근은 조선 총독부의 수장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독립 영웅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안중근은 중국 뤼순 감옥에 갇혀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였다. 백범 김구 선생은 독립 이후 안중근의 유해를 찾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저격당해 숨지고 만다. 중국에 공산당 정권이 들어서고 한국과 교역이 끊기면서 안중근의 유해를 찾을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남아있는 사료를 토대로 유해 발굴 시도를 하고 있으나 뤼순 감옥 어딘가에 묻혀 고국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안중근 의사의 바람은 쉽지 않아 보인다.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최재형은 부모님을 따라 시베리아로 이주했고 그곳을 근간으로 독립단을 조직하여 일본군에 맞서 투쟁하였다. 최재형은 일본군과의 싸움에서 패배하여 1920년 4월7일, 최재형과 동료들은 니콜스크-우수리스크 인근 언덕 기슭에서 일본군에게 처형되었다. 1918~1922년에 고문·총살당했던 조선인들의 공동묘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보존되어 있지 않다. 1935년부터 공동묘지 자리에 시립 석유 저장소가 세워졌다. 지금까지도 최재형의 유해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재형 부인의 유해는 중앙아시아에 있는 키르키스스탄에서 70년 만에 고국 땅으로 오게 되었다. 독립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최재형 선생의 유해는 오염된 땅 어디에 묻혀 고국으로 돌아가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홍범도 장군의 유해는 서거 78년 만에 고국으로 봉환하였다.
하지만 아직도 유해조차 발견되지 않은 독립운동 영웅들이 낯선 땅에 잠들어 있다.
최근 일본 관방장관은 관동대지진에서 조선인을 대량 학살한 일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 후손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볼 차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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