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위대한 정치 철학자로 키워낸 아버지
제임스 밀(James Mill)은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의 아버지로 더욱 유명하다. 그는 에든버러대학을 졸업하고, 런던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였다. 제임스 밀은 경제학 분야에 조예가 있어 책도 저술하였으나 큰 빛을 보진 못하였다고 그의 아들 존 스튜어트 밀이 회고했다. 그러나 아들에게는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 교육했다. 존 스튜어트 밀이 영국을 대표하는 정치 철학자로 세상에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이유다. 제임스 밀의 자녀 교육법을 살펴보자.
아들에게 조기 영재교육을 하다
영재란 두드러지게 뛰어난 사람을 말한다. 평범한 사람도 어릴적 부터 부모가 교육에 노력을 기울이면 영재가 될 수 있다는 교육이론에 따라 현재 조기 교육이 성행하고 있다. 그 원조 격 교육을 한 사람이 제임스 밀이다. 그러나 그의 조기 영재 교육은 지금의 영재 교육과는 결이 달랐다. 제임스 밀은 아들이 3세가 되자 그리스어를 가르쳤으며, 7세에는 이미 플라톤의 대화편을 읽을 수 있게 만들었다. 8세부터 라틴어를 배우도록 하여 존 스튜어트 밀은 많은 문학적 저작과 역사서를 섭렵했고, 12세부터는 논리학과 경제학도 학습해 나갔다. 또래에 비해 언어학적 학습 능력이 뛰어났던 아들이 자만할까 경계한 제임스 밀은 엄격하게 교육하였으며 주변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차단했다. 그 덕분에 존 스튜어트 밀은 자신이 천재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였고, 아버지에게 인정받고자 꾸준하게 공부하여 훗날 그가 위대한 학자로 성장하는 발판이 되었다.
산책 시간에 아들에게 자신의 전공을 완벽하게 가르치다
제임스 밀은 산책 시간을 이용해서 아들에게 자신이 공부한 정치경제학을 강의했다. 아들 존 스튜어트 밀은 아버지에게 배운 내용을 보고서로 만들어 교정받았다. 이 원고는 후일 아버지 제임스 밀이 출판한 『정치경제학 요론』의 초고가 되었다.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는 아버지의 가까운 친구로, 존 스튜어트 밀을 자주 집으로 불러서 함께 산책하면서 정치경제학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존 스튜어트 밀은 아버지의 교육 방법을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그 교수법은 한 사람의 사상가를 양성하기 위한 것으로는 빼어난 고안이었지만, 내 아버지만큼 치밀하고 정력적인 사상가가 시행해야 성공할 수 있는 종류였다. 심지어 그로서도 가시밭길을 뚫고 나가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비록 내가 주제에 강한 흥미를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내게도 분명히 가시밭길이었다고 확언할 수 있다. 애당초 나로서 당장 터득할 수 없는 내용도 많았는데, 아버지는 그럴 때에 이치에 어긋나게 속상해 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그의 방법은 옳았고 성공을 거뒀다. 아버지가 논리학과 정치경제학을 내게 가르친 방법만큼 철저했거나 소양을 기르는 데 적합했다고 할 수 있는 과학적 교육은 전례가 없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나로 하여금 스스로 찾아내게 함으로써 내 능력을 활성화하려고 조금 지나칠 정도로 노력하는 일환으로, 아버지는 설명을 먼저 해주지 않고 내가 목전에 봉착한 난점의 어려움을 완전히 느끼게 된 다음에 해줬다. 그리하여 논리학과 정치경제학이라고 하는 굉장한 학문에 관해서 당대에 알려진 모든 지식을 정확하게 전수해줬을 뿐만 아니라, 나를 그 분야에 관한 독자적인 사상가로 만들었다. 나는 거의 처음부터 나름대로 생각을 가질 수 있었고, 아버지와 견해가 다를 때도 종종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의견 차이는 사소한 문제에 관한 것이었고 또 결국은 아버지의 견해를 표준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지만, 나중으로 가면서는 때로 내가 아버지를 설득하여 세부사항에서 의견을 수정하도록 한 경우도 있었다. 내가 이 말을 하는 까닭은 단지 나 자신이 아니라 아버지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함일 뿐이다. 이런 사례는 아버지의 완벽한 솔직성과 교수방법의 진정한 가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 존 스튜어트 밀, 『자서전』 |
제임스 밀은 자기 아들에게 논리학과 경제학을 가르치기 위해 조금은 과한(?) 측면도 있었으나 열성적으로 가르쳤다는 것을 아들도 인정했다. 제임스 밀이 걷는 운동이 뇌에 좋은 자극이 되어 암기에 도움이 된다는 측면을 알 리는 없었겠지만, 산책하며 자기 전공 분야를 가르치고 토론하며 아들에게 완벽하게 학습시켰다. 제임스 밀의 자녀 교육은 극성처럼 보이기도 하였으나 부모가 노력하지 않으면 제대로 가르칠 수 없는 학습법이었다. 부모가 제대로 알아야 자녀에게 행할 수 있는 교육 방법이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아버지 제임스 밀 밑에서
완벽한 영재 교육을 받았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교육 측면으로 과한 부분도 있지만
아들이 아버지의 가르침을 즐겼기에 가능했던 교육법이었다.
자식 교육을 위해 제임스 밀만큼 열과 성을 다한 부모도 드물었다.
자녀 교육법에 관한 글을 청랑이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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