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파리 올림픽, 최소 규모의 선수단으로 최대 성과를 낸 한국
파리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은 목표치를 훌쩍 뛰어넘은 금메달 13개를 따내며 종합 8위에 올랐습니다. 대회 첫날부터 총과 검, 활로 메달 사냥에 나서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번 대회 시작부터 한국 선수단은 단체 구기 종목에서 출전이 좌절되면서 역대 4번째로 작은 규모의 선수단을 보냈지만, 우려는 우려에서 끝났습니다. 최소의 규모로 최대의 성과를 낸 자랑스러운 한국 선수단처럼 과거 작은 규모로 큰 성과를 냈던 조직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몽골 대제국의 시작을 알린 야호령 전투
9세기까지 중국 북부지방 몽골고원은 여러 세력으로 나눠서 오랜 내전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세계의 정복자 칭기즈칸의 등장은 몽골 초원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몽골을 통합하면서 과거 몽골 세력을 이간질했던 금나라를 공격하기로 합니다. 금나라는 만주에서 일어난 여진족이 세운 나라입니다. 100만의 군사를 가진 대제국 금나라는 10만의 군사력을 가진 몽골군에는 버거운 상대였습니다. 그러나 칭기즈칸은 뛰어난 리더십으로 서로 다른 부족들을 통합하며 전투를 진두지휘합니다. 금나라는 기마병 중심의 몽골군을 상대하기 위해 산악지대인 야호령에서 35만의 병력을 결집시킵니다. 칭기즈칸은 부하 장수 무칼리에게 꼭 승리해 올 것을 요구합니다. 용맹한 몽골군은 말에서 내려 야호령에서 금나라 군부대를 하나씩 격파합니다. 결국 금나라 군은 수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몽골군에게 패배합니다. 야호령 전투로 몽골군의 용맹함이 금나라에 알려집니다. 또한 몽골군은 동북아시아의 최강국 금나라와 싸워 승리하면서 자신감을 가지게 됩니다. 결국 야호령 전투는 몽골군이 금나라를 넘어 세계를 정복하는 발판이 됩니다. 10만 남짓 되는 병력을 가진 몽골은 남쪽으로는 인도, 북쪽으로는 러시아, 서쪽으로 헝가리까지 점령하는 대제국을 이룹니다.
20배가 넘는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승리한 청산리 대첩
조선은 일본의 제국주의의 첫 번째 희생 국가가 되었습니다. 제국주의는 제국의 정치적·경제적 지배권을 다른 민족·국가의 영토로 확대하려는 국가의 충동이나 정책입니다. 일본은 조선을 발판으로 중국까지 영토 확장에 야욕을 보이며 군사적, 경제적 지원을 위해 조선 백성의 고혈을 짜냈습니다. 일본의 수탈은 갈수록 심해졌고 조선 백성은 모국을 버리고 만주로 떠나야 했습니다. 독립군도 조선에서 항쟁이 어려워지자, 만주로 옮겨 독립운동을 이어갔습니다. 독립군의 독립운동에 위협을 느낀 일본군은 2만 5천의 일본 정규군을 만주로 파견했습니다. 일본은 청나라와 러시아를 상대로 승리하면서 군사적 자신감이 고조된 상태였기 때문에 독립군과의 전투를 만만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북로 군정서군을 이끈 김좌진(金佐鎭) 장군과 대한 독립군을 이끄는 홍범도(洪範圖) 장군은 치밀한 계략을 통해 청산리까지 일본군을 끌어들여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청산리 대첩은 독립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20배나 넘는 수적 열세에서도 승리로 이끈 자랑스러운 역사입니다.
최소 규모의 선수단 파견으로 기대 심리가 낮았던 파리 올림픽.
하지만 최고 성적을 거둔 올림픽으로 기억에 남았습니다.
역사 속 사례를 보면 상대적으로 열세인 집단이 강한 집단을 효율적으로 상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규모가 작은 집단이 성과를 내는 비결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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