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유일하고 독특한 군대 '의병'
한국은 반만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면서도 독특한 군대를 가지고 있다. 세계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군대가 바로 '의병'이다. 의병은 나라가 외적의 침입을 받자, 나라의 부름을 받지 않고 스스로 일어나 싸운 군인을 지칭한다. 조선은 일본의 갑작스러운 침략으로 초반에 고전했으나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과 구국의 영웅 이순신 장군 덕분에 왜적을 막을 수 있었다. 이처럼 스스로 분연히 일어나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일어섰던 의병장들을 살펴보자.
일본군 좌절시킨 의병장
신돌석은 구한말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되고 의병 활동을 했던 의병장이다. 통상 의병장은 양반 출신이 많았으나 신돌석은 평민 출신이었다. 출신을 떠나 신돌석은 의병장으로 탁월한 리더쉽을 보여주었다. 특히 그는 경상북도 일대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많은 전투에서 승리했다. 일본군이 울산항을 통해 경상북도를 장악하려던 전략은 신돌석이 이끄는 의병대에 의해서 좌절되고 말았다. 처음 100명에서 시작해서 3,000명까지 늘어났던 신돌석이 이끄는 의병대는 당시 가장 많은 공을 세운 의병대였다. 신돌석은 훗날 자신과 함께했던 부하에게 타살당했으나 나라를 위한 그의 정신은 후대에도 잘 알려졌다.
후금의 침략에 큰 타격을 가한 의병대
정봉수(鄭鳳壽)는 임진왜란(壬辰倭亂)부터 정묘호란(丁卯胡亂)까지 의병을 일으켜 외적을 막은 의병장이다. 정봉수의 활약은 임진왜란보다 정묘호란에서 눈부셨다. 그는 후금을 용골 산성에서 막을 수 없으니 후퇴하라는 조선 정부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성을 지켜냈다. 용골 산성에서 큰 피해를 본 후금은 조선 의병대의 기세에 눌려 화친을 맺게 되었다. 후금은 훗날 병자호란(丙子胡亂)을 일으킬 때 정묘호란의 실패를 타산지석(他山之石) 삼아 조선 의병대 강력한 저항을 받은 지역을 피해서 한양으로 진격했다. 정봉수 의병장은 곽재우(郭再祐) 의병장만큼 알려지진 않았으나 왜란과 호란에서 많은 공을 세운 인물이었다.
나라를 지키고자 스스로 군인이 되었던 의병은 한국에만 존재했다.
평민 출신 신돌석은 양반 출신 의병장들보다 더 많은 공을 세웠고
정봉수는 두 차례에 걸친 외적의 침입에 모두 의병장으로 활동한 독특한 이력이 있었다.
과거 적의 침략에 맞서 활약한 의병들 덕분에 지금의 한국이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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