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내미는 한국에 칼 들이미는 일본
한국은 일본과 전략적으로 우호적인 관계의 필요성을 깨닫고 다시 파트너십을 쌓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본은 일제 강점기 시절 위안부, 강제 징용,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왜곡된 역사 교과서를 검정 통과 시켰다. 앞으로 성장하는 일본 세대들은 한국이 독도를 강제 점령하고 있다고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일본은 치밀한 전략을 통해 한국 영토인 독도를 노리고 있다. 과거 일본이 독도를 빼앗고 한국이 어떻게 다시 되찾아 왔는지 살펴보자.
조선 정부 관리 소홀로 독도를 비워
독도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에 있는 섬이다. 독도의 역사적 기록은 신라 지증왕(智證王)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도는 울릉도와 함께 우산국(于山國)으로 불렸으며 신라 장군 이사부(異斯夫)가 정복하여 현재까지 한국 영토로 인정받고 있다. 울릉도 주민은 독도까지 나가서 어업을 하곤 했으며 조선 세종(世宗) 때 이르러 먼바다에 사는 백성들이 왜인의 침략에 시달리는 것이 걱정되어 내륙으로 들어와 살도록 했다. 이후 울릉도에 조선 인구가 급격히 감소했고, 행정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 틈을 타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 1695년 동래 어부 안용복(安龍福)이 울릉도에 갔다가 왜인들이 61호나 살고 있는 사실을 알고 에도막부에 항의차 방문하였다. 에도막부는 사실 관계를 확인 후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 영토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받았다. 이후 조선인들은 각종 세금을 피해 울릉도로 도피하였고 1900년 고종(高宗) 때에 이르러 2000명이 넘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조선 국력이 약해진 틈을 타 독도를 무단 점거한 일본
한국은 고대국가부터 일본에 선진 문물을 전파하며 상국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1800년대부터 일본이 쇄국정책을 풀고 서양 문물을 적극 받아들이며 급속한 발전을 이뤘고 상황은 역전되었다. 일본은 대륙으로 뻗기 위해 조선이 필요했다. 일본이 조선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청나라와 러시아 강대국의 간섭을 끊어내야 했다. 청일전쟁은 일본이 대국 청나라를 상대로 수월하게 이기면서 수 세기 동안 열도국이라는 열등감에서 벗어나게 된다. 일본은 이를 바탕으로 세계 최고 함대를 가지고 있는 러시아 해군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군사적 요충지인 독도를 무단으로 점거하며 치밀한 군사전략을 짰다. 조선 정부가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항의했으나 외교권을 박탈당해 무력하기만 했다. 일본이 독도를 해군기지로 활용하며 블라디보스토크로 귀환하러 먼 길을 달려온 러시아 함대를 동해에서 괴멸시켰다. 일본은 청나라, 러시아에 연승하면서 기세를 몰아 조선, 중국, 동남아 일대를 대부분 점령하였다. 심지어 미국 해군기지 진주만까지 기습 공격한다. 미국은 이 일에 대한 보복으로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했고 결국 일본이 항복한다. 대한민국은 독립하게 되었으나 자력으로 얻지 못한 독립의 한계로 영토 경계를 명확히 하지 못했고 그 때문에 현재까지도 일본이 독도를 빼앗기 위해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독도 밑에 매장되어 있는 수자원과 지하자원의 가치가 높다.
일본은 역사를 왜곡하여 독도를 빼앗을 궁리를 하고 있다.
한국은 과거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무능을 반성하고
빼앗길 뻔한 독도를 다시 잃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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