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을 저지른 죗값은 언제가 받게 돼
20년 전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은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 사건은 밀양 남고생 44명이 중고생 여러 명을 윤간한 사건이다. 엄청난 사건이었음에도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미흡한 점이 많았고,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또 가해자들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렇게 사건은 흐지부지되며 잊히는 듯했다. 그러나 일부 이 사건을 기억한 시민은 영화 '한공주'를 만들어 세상에 알리기도 하였다. 사람들 기억 속에 사라져 갈 때쯤 유튜버들은 자극적인 소재와 조회수를 높여 수익을 만들고자 과거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 가해자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피해자는 힘든 삶을 살고 있었던 반면 가해자들은 잘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런 현실에 분노했다. 유튜버가 가해자의 현재 삶을 낱낱이 공개하며 그들이 누리는 행복을 철저하게 빼앗았다. 결국 가해자들은 법이 심판하지 못했던 죗값을 치르게 되었다. 과거의 잘못은 언젠가는 대가를 치른다는 사실을 역사로 알아보자.
고구려 왕의 시체를 가져가며 모욕한 연나라의 최후
중국 선비족이 세운 연나라는 고구려를 침략한다. 당시 뛰어난 지략가인 연나라 황제 모용황(慕容皝)은 고구려 수도를 쉽게 함락시켰다. 모용황은 고구려 군의 기세를 꺾기 위해 고국원왕(故國原王)의 아버지인 미천왕(美川王)의 시체를 가지고 연나라로 돌아갔다. 고국원왕은 수도도 폐허가 되었고, 아버지 시체도 빼앗겼으며, 아내와 어머니까지 인질로 잡히는 등 힘든 시간을 겪었다. 남쪽에서는 힘을 키운 근초고왕(近肖古王)의 백제가 한강을 장악하기 위해 고구려를 공격할 기회만 노렸다. 고국원왕은 근초고왕의 침략을 막다가 전쟁에서 사망했다. 위기에 빠진 고구려는 고국원왕 사망 이후 힘을 키웠다. 고구려는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에 이르러 국력이 다시 회복되었다. 광개토대왕은 먼저 선대 조상 고국원왕의 치욕을 갚고자 백제를 제압했다. 고구려는 후방을 안정시킨 후 빼앗긴 요동 지역 공격에 나섰다. 고구려는 연나라와 요동 지역에서 끊임없이 대립했으며 광개토대왕이 이끄는 고구려 군에 의해 연나라는 끝내 멸망하였다. 연나라는 고구려 미천왕의 시체를 훔쳐 가며 모욕한 죗값을 나라의 멸망으로 치러야 했다.
간신의 말에 놀아나 죽은 후에도 대가를 치른 초평왕
오자서(伍子胥)는 중국 춘추시대 정치가이다. 그의 아버지는 초나라 태자를 가르치는 스승이었다. 당시 초평왕(楚平王)은 간신 비무기(費無忌)의 거짓된 말에 오자서의 아버지와 형을 죽였다. 오자서는 간신히 초나라를 벗어나 떠돌이 생활을 하다 오나라왕 합려(闔閭)의 신하가 되었다. 그의 뛰어난 재능은 오나라가 강력한 국가로 성장하는 데 기여했다. 오자서는 복수를 위해 이를 갈았고, 마침내 오나라는 초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었다. 오자서는 초평왕의 아들 초소왕(楚昭王)에게 분풀이하려 했으나 도망친 뒤였다. 오자서는 죽은 평왕을 무덤에서 꺼내 시체에 300번 채찍질을 하였다. 초평왕은 간신의 말에 놀아나 뛰어난 충신을 죽임으로써 사후에도 혹독하고 치욕스러운 대가를 치렀다.
밀양 사건처럼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은 가해자는
시간이 흘러 더 큰 죗값을 치르고 있다.
사람이 죄짓기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언젠가
그 죗값을 치러야 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죗값과 관련된 글을 청랑이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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